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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원자력협정 시한 2년연장 가닥… 정부, 이르면 23일 결과 발표

입력 | 2013-04-22 03:00:00

“이러다 원전 문 닫는 날 옵니다” 월성의 한숨
“사용후핵연료 年 5400다발씩 쌓여 재처리 급한데 연구마저 막아서야”




18일 경북 경주시 월성원자로의 1호기 중앙통제실. 복도를 따라 들어간 입구 안쪽에는 작은 보온병 크기만 한 핵연료 모형이 전시돼 있었다. 여러 개의 굵은 철심을 하나로 묶어 놓은 듯한 형태였다.

“이런 핵연료 다발이 하루 평균 15개씩 교체됩니다. 1년에만 5400개의 사용후 핵연료 다발이 발생하지요. 쌓아 놓을 공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게 큰 문제입니다.”

현장을 안내하던 한 원자력전문가는 핵연료의 형태와 교체 주기를 설명하면서 사용후 핵연료의 저장 문제를 특히 강조했다. 이날 미국 워싱턴에서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위한 제6차 본협상이 이틀째 진행 중이었다. 국내 유일의 중수로인 월성 원전(1∼4호기)에서는 경수로인 다른 원전들보다 훨씬 많은 양의 사용후 핵연료가 나온다. 그래서 개정 협상에 대한 월성원전 관계자들의 관심은 특히 높았다.

월성원전과 인근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원전을 멈춰 세울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청구 월성원자력본부장은 “우리로서는 우라늄 농축보다 재처리가 더 급하다”며 “지금 당장 재처리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니 관련된 연구개발(R&D)만이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명재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이사장은 “원전에서 사용한 장갑과 방호복 같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용지를 선정하는 데만 (지역주민의 반대 등으로) 20년이 걸렸다”며 “방폐장 확보가 어려운 만큼 폐기물 용량을 줄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자력업계의 이런 요구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협정 시한을 2년 연장해 개정 협상을 미루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아쉬움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이 협상에 관여했던 한 관계자는 “우리가 협상을 밀어붙이면서 미국 측에 ‘대선 이후 새 정부와의 협상은 더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민망한 엄포가 돼 버렸다”며 “정권 중반에 접어드는 2년 뒤에는 협상 전망이 더 어둡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과 관련해 “한 번 개정이 되면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니 빨리 맺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다”는 뜻을 협상팀에 명확히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일단 이번 협상을 통해 새 정부의 개정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전달한 만큼 시간을 가지고 설득하면서 미국 내 여론을 변화시키는 전략을 쓰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미국과 합의된 협상내용을 놓고 관계 부처 간 협의를 거쳐 23일경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협정의 시한을 2년 정도 연장하는 대신 미국이 원자력수출통제법 등의 적용을 완화해 한국의 원전 수출에 필요한 미국의 설비 반출을 지원하는 방안 등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농축우라늄의 확보와 관련해서는 해외 농축업체의 지분을 일부 매입하는 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전력은 지난해 말부터 유럽의 우라늄농축업체인 유렌코의 지분 매입을 검토해왔다.

경주=이정은 기자·동정민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