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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장편소설 ‘천년 한(恨) 대마도’ 쓴 이원호 작가

입력 | 2013-04-22 03:00:00

“이승만 대통령, 일본에 60여회 대마도 반환 요구”




17일 만난 이원호 작가가 대마도에서 직접 찍었다는 조선통신사비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새 소설 ‘천년 한 대마도’를 펴낸 그는 “대마도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사라지기 전에 관심을 가져 ‘대마도가 한국 땅’임을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는 주장을 담은 장편소설 ‘천년 한(恨) 대마도’(사진)가 22일 출간됐다. 소설을 쓴 작가는 문화일보 인기 연재 성인소설 ‘강안 남자’(2002∼2009년)를 쓴 이원호 씨다. 1991년부터 지금까지 60종 160권을 써내 총 1000만 권은 족히 팔았다(작가 주장)는 밀리언셀러 작가다. 공전의 히트작 ‘강안 남자’의 후광이 강렬해서였을까, 이번에 그가 ‘대마도’라는 묵직한 소재로 소설을 쓴 이유가 궁금했다. 대마도는 현재 일본 나가사키(長崎) 현(縣) 부속이다. 섬 전체가 쓰시마(對馬) 시(市)에 속한다. 부산에서는 49.5km, 일본 후쿠오카(福岡)에서는 147km 떨어져 있다. ‘천년 한 대마도’는 대마도에서 1000년간 대를 이어 살아온 두 한국인 가문의 후예들이 남북한 합동 군사작전을 펼쳐 과거 일본에 빼앗겼던 대마도를 2014년 수복한다는 줄거리다. 이 과정에서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까지 세 차례의 대마도 정벌(1389년 박위의 1차 정벌, 1396년 김사형의 2차 정벌, 1419년 이종무의 3차 정벌)도 소개되고 임진왜란 관동대지진 학살 등 일본의 한민족 침탈사를 녹여냈다. 》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작가는 “대마도는 1867년 메이지(明治) 유신 이전까지는 쓸모없는 땅으로 사실상 버려져 있다가 어수선한 국제정세를 틈타 일본이 대마도를 1871년 이즈하라(嚴原) 현으로, 다시 1876년엔 나가사키 현으로 편입시켰다”고 말했다.

“그 후론 끊임없이 ‘대마도는 일본 땅’이라고 우리와 그들 자신을 세뇌한 겁니다. 우리가 그 조작된 일제 식민사관을 여전히 지닌 채 대마도를 당연히 일본 땅이라고 여기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죠.”

1785년 日 고지도에 ‘대마도는 조선땅’

―대마도가 우리 땅인 근거는 뭡니까.

“1750년대에 제작된 ‘해동지도’ 설명문에는 ‘백두산이 머리가 되고 태백산맥이 척추가 되며 영남의 대마도와 호남의 탐라를 양발로 삼는다’고 쓰여 있어요. 1785년 정한론(征韓論)의 시조 격인 일본 지리학자 하야시 시헤이(林子平)가 만든 ‘삼국접양지도’에도 대마도가 조선 땅으로 표기돼 있고요. 또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사흘 뒤 연 첫 기자회견부터 1950년 6·25전쟁 전까지 60여 회에 걸쳐 일본 정부에 대마도 반환을 요구했어요. 그러나 6·25가 발발하자 한국은 일본을 통해 유엔군과 물자를 공급 받아야 해서 더이상 반환을 거론할 수 없었죠. 그게 무척 안타까워요.”

그는 결연한 어조로 두툼한 A4 용지 이면지 뭉치에 손 글씨로 빼곡하게 쓴 메모들을 꺼내놓았다. 소설을 쓰기 위해 각종 자료와 책에서 발췌한 역사적 사실을 정리했다고 한다. “대마도 이즈하라 항 부근엔 최익현 순국비, 덕혜옹주 결혼기념비가 서 있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조선통신사비와 고려문도 세워져 있어요. 대마도의 유전자(DNA)는 곧 한국이라는 걸 가보면 바로 알게 됩니다. 또 한국의 성황당처럼 조상신이나 토지신을 모시는 일본의 신사가 대마도에 29개 있는데 모두 한반도를 향해 세워져 있어요. 역시 대마도가 우리 땅이란 증거입니다. 일제가 대마도에서 한국의 흔적을 지워내면서도 신사까지 없애지는 못했던 겁니다. 그런데 제가 전문적으로 자료를 모은다면 역사학자이겠죠. 저는 학자가 아니라 작가입니다. 역사를 통해 확신을 얻고 역사적 사실을 추려내 거기에 인물과 이야기를 만듭니다.”

그는 이미 백제 멸망사인 ‘계백’, 이승만 대통령의 삶을 다룬 ‘불굴’이란 역사서를 비롯해 연애, 기업, 폭력, 공상과학(SF)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었다. 이번엔 갑자기 왜 대마도에 대해 썼을까.

“어느 날 신문기사를 읽다가 우연히 알게 됐어요. 1923년 조선총독부 소속 조선사편찬위원회가 역사학자 구로이타 가쓰미(黑板勝美) 고문 주관하에 대마도를 방문해 한국 관련 문서 6만6469장, 고기록 3576권, 고지도 34장 등을 불태웠다는 사실을요. 일본이 그토록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왜 없앴을까요? 대마도가 조선 땅이라는 증거를 없애려는 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어 이때부터 대마도를 다니고 자료를 찾아봤어요. 그랬더니 일본이 한반도 역사에 걸쳐 침략하고 약탈한 게 자꾸 부각됩디다. 고려 말기 잦은 왜구의 침입, 임진왜란,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 이번에 내가 낸 ‘천년 한 대마도’는 한마디로 1000년 동안의 일본 침략사예요. 우리는 이웃나라라고 해도 일본으로부터 얻은 게 거의 없는데, 일본은 독도까지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니 억울했습니다. 대마도 문제를 덮기 위해 독도로 까다롭게 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소설까지 쓰게 됐습니다.”

“日, 지금도 한국흔적 부지런히 없애”

―소설 ‘천년 한 대마도’에서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의 비율은 어떻게 됩니까.

“제 소설은 ‘팩션’(faction·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새로운 문화장르)입니다. 팩트(사실)와 픽션(허구)의 비율이 3 대 7 정도겠네요. 제가 책을 많이 써봐서 아는데 팩션에서 팩트가 절반만 돼도 독자들이 지루해서 못 읽습니다.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등 소설의 등장인물을 전부 실명 처리했어요. 제 소설로 인해 대마도가 이슈화돼 이제라도 대중이 관심을 갖고 학자들은 더 늦지 않게 연구해 줬으면 좋겠어요. ‘계백’을 쓸 때의 경험에 비춰보면 망한 나라, 잊혀진 땅의 자료는 금방 사라져요. 그래서 초조해집니다. 역사적 기록이 조작되거나 분실되면 후세는 뿌리 없는 존재가 되잖아요. 대마도 관광 가이드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일본은 지금도 대마도 유적에 한국 역사의 흔적이 있으면 부지런히 없애고 있다고 합디다.”

소설 속 남북 관계는 지극히 돈독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특사를 보내 2000명의 남북 연합군을 관광객으로 위장시켜 대마도에 잠입시킨다. 김 위원장은 노동미사일을 대마도에 쏘아 한국의 대마도 탈환에 기여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썼나요.

“대선 전인 지난해 초 소설을 시작할 땐 가상의 인물로 설정했는데, 쓰다 보니 대마도 문제를 이슈화하고 리얼리티를 살리려면 실명이 좋겠더라고요. 국방부 장관도 김병관 씨로 만들었다가 김관진 씨로 바꿨죠(웃음). 소설 말미에 박 대통령이 물어요. 과거 지방유세 중 테러를 당하고 질문했던 ‘대전은요?’를 패러디해서 ‘북한은요?’라고. 김정은 위원장이 일본을 향해 미사일을 쏘았죠(웃음).”

―소설에는 ‘강안 남자’를 연상시키는 야한 묘사도 나오던데….

“대중이 원하는 역사는 결국 이해할 수 있는 역사 아니겠어요? 괜히 교과서적으로 팩트에만 연연해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죠. 제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들이 ‘아, 그렇구나. 일본이 1000년 동안 우리에게서 많이 빼앗아 갔구나. 그런데 우리 한민족은 너무 잘 잊어버리는 민족이구나’ 깨닫도록 썼어요. 대중 역사소설은 재미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지, 의미 속에서 재미를 찾으면 안 돼요. 어떻게 보면 나 같은 사람이 독자들에게 다가가기에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나 같은 사람이라면….

“고(故) 김대중 대통령을 다룬 ‘레임덕’이란 실명 정치소설을 쓸 때 청와대로 불려 들어간 적이 있어요. 그때 뭐라고 명함을 파야 하나 고민하다가 지금의 ‘대중소설가’란 직함을 떠올려냈죠. 문학적 가치보다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 가는 소설가…. 이문열 조정래 황석영은 서울 강남 압구정동에 매장을 가진 사람이라면 나는 좌판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이죠. 짝퉁도 있고 잘못된 제품도 있지만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파는 상인 말이에요. 전 등단한 적이 없어요. 문단? 스스로 단을 만들겠다고 했어요. 그깟 것 꼭 양반 상놈의 구분 같아서. 한 지인은 저더러 ‘면허증 없는 운전사’라던데 그 면허를 누가 주나요? 깊이나 재미는 독자가 판단하는 것 아니겠어요? 문단에서만 인정받고 독자들이 외면하면 그 작가는 시체나 다름없죠. 참, 이 얘기 신문에 써도 돼요. 돌아가신 제 아버지가 경성사범학교를 나온 친일파였어요. 헌신적인 초등학교 교장이었지만 한국과 일본이 스포츠 경기를 할 때면 일본을 응원했어요. 얼마나 일제가 교육을 시켰으면…. 어렸을 땐 그런 아버지를 보며 살의마저 느꼈죠.”

대화는 자연스럽게 그의 작가 인생으로 넘어갔다.

전북대 섬유공학과를 나온 그는 1980년대 속옷회사 BYC의 중동지역 담당자로 일하다가 1987년 경세무역이란 무역회사를 차렸다. 잘나가던 사업은 1990년 부도가 났다. 그는 사업을 접고 대학 때부터 소질이 있던 글쓰기에 나섰다. 이후 출판사의 권유로 소설 ‘밤의 대통령’(정의로운 조직폭력배가 사회악을 일소한다는 내용)을 썼는데 이게 대박이 나면서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대마도의 올바른 역사 깨달아야”

그는 다작의 작가로 유명하다. 이번에 ‘천년 한 대마도’를 쓸 때에도 5권의 서로 다른 소설을 함께 써나갔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살기 위해 썼다. 그리고 여러 소설을 동시에 쓸 때 지치지 않고 에너지가 생긴다”고 말했다.

“제가 비즈니스 마인드가 있어 그런지 소설가는 끊임없이 생산해내야 한다는 의식이 있습니다. 사업을 망하고 보니 한쪽 시장(중동)만 집중해 시장과 제품을 다변화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들더군요. 어느덧 소설 카테고리는 다양해졌고, 독자층도 견고해졌습니다. 단, 소설가는 소설로 독자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일부 소설가는 트위터에만 열중이던데, 그건 소설가의 본분이 아니죠.”

이 씨의 이번 소설은 오프라인 출간에 앞서 이미 이달 중순부터 인터파크에서 무료로 인터넷 연재를 시작했다. 그는 10, 20대 젊은 독자들과 소통해야겠다 싶어 인터넷 장르소설 사이트인 ‘문피아’ 등에도 몇 년 전부터 소설들을 연재해 왔다. “온라인 시장의 독자들에게도 대마도에 관한 역사의식을 심어주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기사에 참고하기 위해 이 씨의 역사 메모 뭉치를 빌렸다. 다음 날인 18일 그는 기자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불쑥불쑥 내지르듯 인터뷰해서 당혹스럽지는 않으셨을까 신경이 쓰입니다. 참, 메모지는 월요일쯤 찾아가도 되겠지요? 전 자료, 오리지널 원고 메모지까지 다 보관하는 습성이 있어서요.’ 20여 년간 대중과 함께 호흡하다가 대마도라는 우리 민족의 숙제에 매달리게 된 작가의 집념인 듯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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