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신나는 공부/입학사정관제, 바로 알자!]“‘영재선발’ 부담감 떨치고 ‘나’를 설명하세요”

입력 | 2013-04-23 03:00:00

KAIST학교장추천전형에 합격한 윤종완 씨




획기적인 암(癌) 치료제를 개발해 인류에 기여하는 꿈을 실현하고픈 윤종완 씨(19·서울 고려대사범대부속고 졸). 윤 씨는 2013학년도 KAIST 입학사정관전형인 ‘학교장추천전형’에 최종 합격해 자신의 꿈을 향한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KAIST는 과학고, 영재고 출신의 수학과학 ‘수재’들이 대거 지원하는 만큼 일반계고 학생이 합격하기는 쉽지 않다는 선입견이 있는 게 사실. 윤 씨 역시 고3 중반까지도 KAIST는 자신이 갈 수 없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대학이라고 생각했다는데….

불합격의 두려움을 떨치고 도전장을 낸 윤 씨는 과연 자신의 고교생활 스토리에서 어떤 강점을 승부수로 삼았을까.

전공 적합성… ‘실적’보다 ‘에피소드’로 승부

윤 씨가 KAIST에 지원하기로 마음먹은 뒤 자신의 고교생활 스토리를 돌아보면서 주목한 점은 생명과학과 약학에 관심을 갖는 데 큰 영향을 준 자신의 가정환경.

윤 씨는 고3이 되기 직전 아버지가 간암 판정을 받자 암 치료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약물을 공부하는 데 빠졌다. 약물이 효능을 발휘하는 원리와 처음 발견된 과정 등을 자세히 알아보는 과정에서 암 치료제를 개발하는 연구자가 되기를 자연스레 꿈꾼 이야기로 지망전공에 대한 높은 관심을 설명했다. 생물선생님을 괴롭히다시피 하며 암과 밀접한 유전자에 대해 공부한 스토리도 강조했다.

“고3 생물Ⅱ 수업시간에 ‘세포주기’를 배우면서 선생님으로부터 암세포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때부터 선생님을 쫓아다니며 원 발암 유전자인 ‘Ras’나 종양 억제 유전자인 ‘p53’에 대해 깊이 공부했죠. 이 스토리로 지망전공에 대한 열정과 진로에 대한 확신을 충분히 어필했다고 생각해요.”(윤 씨)

강점 부각? 수학·과학 대신 ‘영어 능력’


윤 씨는 어릴 때부터 과학을 좋아한 만큼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과학 관련 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이 없지 않다.

고2 2학기 때 ‘생물 및 광물자원 전쟁에서 살아남기’를 주제로 교내 ‘과학 탐구주제 발표대회’에서 최우수상을, 고3 1학기 때 교내 ‘과학경시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윤 씨가 자신의 특별한 경쟁력으로 내보인 것은 다름 아닌 ‘영어’ 능력. 그는 고2 때부터 고려중앙학원 이사장 장학생 자격으로 특별 영어교육과정(총 90시간)을 이수하고 ‘우수상’을 수상한 경력, 고3을 앞둔 2011년 2월 전국 규모 영어 토론대회 ‘Korea School Debating Championship 2011’에서 외국어고 재학생을 누르고 1승을 거둔 스토리 등을 부각했다.

“KAIST의 강의 대부분이 영어로 진행되는 것을 고려해, 제가 KAIST에서 학업과 연구를 수행할 만큼의 충분한 외국어 구사능력을 지녔음을 어필했어요. 수많은 지원자가 수학·과학의 전문성을 드러내느라 집중할 때 저는 다른 경쟁력을 제시한 거죠.”(윤 씨)

‘외톨이 수재’ 아닌 ‘나눔형 인재’ 강조

KAIST 입학사정관전형의 자기소개서에는 본인이 작성하고 싶은 내용을 자유롭게 기술할 수 있는 항목이 하나 있다.

이 항목에서 윤 씨가 강조한 것은 자신의 단점을 창의적으로 극복한 스토리. 활동적인 성격 탓에 휴식시간에 진득하게 앉아 공부하는 것이 어려웠던 자신이 고교 3년간 한 친구와 함께 공부하면서 실력을 키운 이야기다. 윤 씨는 “전교 1등인 제가 전교 70등인 친구와 공부를 같이 하면 저만 손해가 아니냐는 친구들의 시선도 있었다”면서 “처음에는 친구를 돕고 싶은 마음으로 함께 공부를 시작했는데 친구가 고3 때 전교 4등까지 성적을 올리고 저는 불완전하게 알던 내용을 완벽히 보완할 수 있어 ‘윈윈’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윤 씨는 “주중에는 친구와 협동학습, 주말에는 장애인과 할머니·할아버지를 위한 봉사활동을 고3 때까지 놓지 않은 이야기로 이타적 인성을 보여주려 했다”면서 “KAIST 입학사정관전형에 지원하고 싶은 일반계고 수험생이라면 수학·과학 전문성을 증명하느라 고민하기보다는 고교생활 동안 나름대로 열정을 발휘한 스토리에서 자신만의 승부수를 꺼내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 정자호 KAIST 입학사정관 “작은 경험에서 성장의 밑거름을 찾으세요” ▼

KAIST 입학사정관전형인 ‘학교장추천전형’은 △학업에 대한 열정 △학교생활의 충실성 △KAIST에 진학하려는 의지를 두루 갖췄다고 판단해 학교장이 추천한 지원자를 대상으로 학업 역량과 이공계 분야 적합성, 인성 등을 종합 평가해 합격자를 선발한다.

130명 정원에 672명이 지원, 5.17 대1의 경쟁률을 기록한 이 전형에서 윤 씨가 최종 합격한 비결을 정자호 KAIST 입학사정관에게서 들었다.

일반계고 학생다운 자기소개서에 ‘점수’

KAIST 입학사정관전형 지원자 중 상당수는 고교생 수준을 크게 넘어서거나 지나치게 학술적인 내용을 자기소개서에 기술하면서 지망전공에 대한 이해도와 열의를 어필하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 입학사정관은 “윤 씨의 경우 아버지의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을 찾는 과정에서 발암 유전자나 종양 억제 유전자를 공부하게 됐고 이를 계기로 암 치료제 연구자가 되는 꿈을 갖게 됐다는 스토리에서 고교생다운 지원동기를 발견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정 입학사정관은 ‘배려, 나눔 실천사례’를 기술하도록 한 자기소개서 항목에서 윤 씨의 영어구사 능력이 자연스레 강조된 것에 주목했다는 설명. 정 입학사정관은 “대체로 과학실험 경험이 풍부한 KAIST 지원자들은 과학실험을 할 때 팀워크가 잘 이뤄지도록 ‘조정자’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로 자신의 배려심을 증명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전국 규모 영어토론대회에 ‘팀워크’를 배웠다고 한 윤 씨의 에피소드는 일반계고 학생다운 진정성 있는 면모와 외국어에서의 강점을 두루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집착력’ 보여준 암 탐구… 연구자 자질 보여


자신이 창의적 과학기술 인재임을 자기주도적 활동·경험으로 보여 달라는 자기소개서 문항에서 상당수 KAIST 지원자는 혼자의 힘으로 탐구한 과정을 부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과학적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만의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한 스토리가 학문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사실.

윤 씨는 어땠을까. 정 입학사정관은 윤 씨가 자기소개서에서 “선생님께 죄송스러울 정도로 집요하게 여쭤봤다”고 표현했듯이 주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인적자원을 적극 활용해 암 관련 유전자를 탐구한 모습에서도 능동적인 자세와 열의를 엿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배려·봉사하는 과학자’ 인재상에 부합해

과학기술 분야에서 윤리와 인성이 점차 중요시되는 만큼 청년 과학인재를 선발하는 과정에서도 지원자가 지닌 휴머니즘은 학문적 전문성 못지않게 중요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윤 씨의 경우 성적대와 계열이 다른 친구와 함께 3년간 꾸준히 공부한 일화에서 연구자에게 필요한 인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게 정 입학사정관의 평가.

정 입학사정관은 “자신의 비해 성적이 많이 뒤처지는 친구의 공부를 돕다보니 자신의 실력도 더욱 성장했다는 윤 씨의 이야기는 학생다움과 성실함이 모두 묻어나는 대목”이라면서 “윤 씨의 이 같은 모습은 ‘인류를 위해 봉사하고 자신 주변을 배려하는 과학자’를 키워내고자 하는 KAIST의 인재상에도 잘 부합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 입학사정관은 “KAIST 재학생들은 공부와 연구에만 몰입할 것 같은 인식과 달리 역동적인 대학생활을 펼치고 있는 만큼 일반계고 학생도 ‘영재성’을 평가받는다는 괜한 부담감은 떨치고 윤 씨처럼 적극적으로 지원하면 합격의 문이 열린다”고 조언했다.

글·사진 이강훈 기자 ygh83@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