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차 문화 1번지로” 故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전회장의 집념“2등 차는 없다” 아들 서경배 회장, 엄격한 품질관리로 1등 차 생산“한중일 3국 으뜸 브랜드로” 일로향-삼다연 등 차별화된 제품 개발
제주 서귀포시 서광다원에선 첫 수확을 기다리는 찻잎이 한창 올라오고 있다. 22일 오전 서광다원 곳곳에선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서귀포=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서광다원은 30여 년 전만 해도 제주 3대 오지 중 하나였다. 제주 사람들은 이곳을 ‘머들(돌무지)’이라고 불렀다. 1983년 본격적으로 개간이 시작될 때만 해도 비포장도로로 3시간 넘게 걸어서 들어와야 했던 곳이다. 전기는커녕 식수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같은 제주 지역의 도순다원과 한남다원도 비슷했다.
이곳을 330만5000m²(약 100만 평)가 넘는 녹차 밭으로 바꾼 것은 고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전 회장과 아들인 서경배 회장의 집념이었다. 서 전 회장은 1979년 본격적으로 녹차 사업을 시작한 뒤 제주 지역에 꾸준히 투자했다. 아들인 서 회장은 수확기가 되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 이곳을 찾으며 관심을 쏟았다. 부자의 노력은 한국 녹차 문화의 재개를 알리는 원동력이 됐다.
22일 서광다원에서 이민석 수석연구원이 찻잎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왼쪽). 아모레퍼시픽이 지난달 제주 서귀포시에 문을 연 ‘오설록 티스톤’에선 전문 큐레이터가 차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귀포=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서 전 회장이 녹차 사업에 뛰어든 것은 사업성이 아니라 일종의 신념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서 전 회장은 녹차 사업에 대한 의지를 밝히면서 “우리보다 훨씬 더 큰 대기업들이 앞장서야 하는데 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에 손을 대지 않는다”며 “우리가 나서 한국의 녹차 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10년은 지나야 생산성이 보장되는 산업에 함부로 뛰어들면 안 된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하지만 서 전 회장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100여 번에 걸친 현장조사가 이뤄졌다. 연평균 14도 이상의 기온, 많은 일조량, 1600mm 이상의 연강수량을 보이는 후보지 가운데 제주 지역이 최종 낙점됐다. 물이 잘 고이지 않는 지질 덕분에 차 생산에 적합하다는 게 결정적이었다.
서광다원에서 생산한 제품들은 높은 품질을 자랑한다. 대표적인 제품이 ‘일로향(一爐香)’이다. ‘일로향’은 그해 가장 먼저 수확한 찻잎으로 만드는 프리미엄 제품으로 한 해 1000통(1통에 60g) 정도만 생산된다. ‘북미 차 챔피언십’ 덖음차 부문에서 “한국에 이런 뛰어난 차가 있었느냐”는 반응을 얻으며 세 번(2009, 2011, 2012년)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일로향’이 이렇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과 연구 덕분이다. 장원 설록차연구소에서는 매년 4, 7, 10월 정기 수확시기가 되면 매번 1200∼1600여 점의 찻잎 샘플을 채취해 품질 검사를 진행한다. ‘일로향’은 여기에서 가장 우수한 것만 엄선해 만든다. 또 채엽(採葉·잎을 따는 일)부터 시작해 잎을 말리고, 덖은 뒤 건조하는 등 7개 과정을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세심한 품질 관리가 이뤄진다. 박현민 아모레퍼시픽 오설록 브랜드매니저는 “대규모 녹차 밭에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꾸준한 표준화 작업을 진행해왔다”고 말했다.
○ ‘오설록 티스톤’ 우리 차 체험공간
“차(茶)라는 단어를 뜯어보면 ‘사람과 가장 가까운 나무와 풀’이라는 뜻입니다. 건강에 좋아 ‘차수(茶壽·108세)’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 차 체험공간인 ‘오설록 티스톤’의 이진주 큐레이터(27·여)가 말했다. ‘오설록 티스톤’은 지난달 ‘티 뮤지엄’ 바로 옆에 문을 열었다. 아모레퍼시픽은 서광다원과 함께 이 일대를 한국 차 문화의 1번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차 테마파크’ 수준으로 키우고 있었다.
우리나라 차 문화를 중국이나 일본의 차 문화와 차별화하려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제품이 2010년 내놓은 우리나라 최초의 후발효차인 ‘오설록 삼다연(三多然)’이다. 발효를 위해 된장 등 장류를 발효하는 데 쓰이는 1000여 가지 발효균을 연구했다.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후발효차인 중국의 보이차와는 다른 한국적 특징을 살리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한라봉 껍질 같은 제주도의 여러 특산품을 넣은 ‘블렌딩 티’ 시리즈도 내놨다.
서귀포=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바로잡습니다]
‘그들에게 제주는 三茶島’ 기사에서 아모레퍼시픽 전 회장의 이름은 서정환이 아니라 서성환이기에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