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권 살아있는… 4·19정신 담은 시 쓰고싶어”
당시 서울 도심은 시끄러웠다. 젊은 학생들이 도심에서 “이승만 대통령 부정선거, 당선무효”를 외쳤다. 4월 19일이 되자 피를 흘리는 학생들이 중앙의료원으로 실려 왔다. 병실마다 부상당한 학생들로 넘쳐났다. 허 씨는 같은 병실에서 누워있는 학생들을 보고 가슴이 미어졌다. 그는 1951년 전남 순천고를 졸업한 뒤 공병사관학교를 거쳐 장교로 임관했다. 이후 1955년까지 복무하다 폐 농양을 앓게 됐다. 6·25전쟁 때 조국을 지키기 위해 펜을 놓고 군인이 된 그는 학생들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꼈다.
허 씨는 병상에서 “학생들은 왜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는지, 누가 저 지경으로 만들었는지…”를 고민하며 창문을 바라봤다. 창가에는 누군가 가져다 놓은 붉은 꽃이 있었다. 학생들이 흘린 피처럼 붉은색의 베고니아 꽃이었다. 허 씨는 4·19가 끝난 뒤 수술을 받았고 같은 해 말 폐 농양이 치유돼 제대했다.
허 씨는 이후 고향인 전남 순천시 대대동에서 50년간 오이농사를 지었다. 순천만에서 농부로 살면서 지금도 시를 쓰고 있다. 허 씨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4·19 민권 정신을 53년간 잊지 않고 살았다”며 “민권이 살아있는 정치를 꿈꾸며 4·19정신을 담은 시를 계속 쓰고 싶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