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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서 ‘진상 짓’… 본전생각 탓? 술 탓?

입력 | 2013-04-23 03:00:00

승무원에 반말 폭언 성희롱 협박까지
비싼 표값에 상전인양 서비스 요구… 기내 제공되는 술도 난동 원인으로




“종이컵에 커피를 따르면 환경호르몬이 나와. 플라스틱 잔도 못 믿겠으니까 그냥 와인 잔에 커피 따라 와.”

지난해 11월 인천에서 미국 시카고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승객 A 씨가 한 승무원에게 이처럼 거친 말투로 커피를 요구했다. 이 승객은 힌두교인용 음식을 달라고 한 뒤 “그냥 궁금해서 시켜봤다”며 물리는가 하면, 디저트로 나온 멜론을 핥은 뒤 복통이 난다며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분석을 의뢰하겠다고 보관용 얼음을 요구했다.

국내 항공사 승무원들은 22일 “당치도 않은 요구를 하는 이른바 ‘진상 손님’들을 1년에 수백 번도 더 겪는다”고 입을 모았다. 현행법은 기내 난동을 항공 안전과 직결된 문제로 보고 강력한 처벌조항을 두고 있다.

하지만 항공사 측이 실제로 법적 대응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기내 치안의 책임자지만 동시에 서비스업 회사의 직원들이기도 한 승무원들이 수모를 감수하고 속으로 삭이는 게 대부분이다. 이번 포스코에너지 임원의 경우도 승무원 폭행에까지 이르지 않고 밥과 라면으로 트집 잡는 정도였으면 별일 없이 넘어갈 수도 있었다.

승무원들이 말하는 기내 소란행위는 크게 승무원에게 반말, 폭언을 하거나 성희롱을 하는 경우, 개인 신상정보를 집요하게 물어보거나 부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행태로 분류된다. 시비가 벌어져서 승무원이 사과하면 “무릎 꿇고 사죄해”라는 식으로 나오거나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과시를 하는 사람,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을 하는 사례도 많다. 지난해 10월 태국 방콕에서 인천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여승무원에게 “무서우니까 안아 달라”고 요구하다가 거절당하자 “싸가지가 없다”며 항의한 남성 승객도 있었다.

한 항공업체 직원은 “아무래도 비싼 돈을 내고 비행기 표를 산 데다 승무원들의 친절한 서비스를 받다 보면 스스로 ‘상전’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 승무원을 막 대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며 “우리끼리는 ‘제복만 입으면 죄인’이라고 말한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기내에서 제공되는 술이 이런 ‘진상 짓’의 원인이라고 지적하지만 꼭 술 때문만은 아니다. 인천공항 발권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도 여권을 집어던지거나 폭언을 하는 승객을 종종 본다고 전했다.

기내 난동이 한국 승객만의 문제인 것은 아니다. 1월에는 미국 뉴욕에서 인천으로 오던 비행기 안에서 여성 승무원 3명을 껴안고 이를 말리던 남자 승무원에게 주먹을 휘두른 미국인 승객이 착륙 즉시 인천공항경찰대로 넘겨졌다. 러시아에서는 최근 기내 난동 사고가 잦자 하원에서 여객기에 술 반입을 금지하는 법안의 입법이 추진되기도 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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