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회의원 168명이 어제 야스쿠니 신사의 봄 정기 대제에 집단 참배했다. 참배 국회의원이 100명을 넘어선 것은 2005년 10월 가을 정기 대제 이후 처음이다. 일본 정부의 2인자인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이 21일 야스쿠니를 참배한 것에 대해 한국이 외교장관 회담까지 취소하며 항의했는데도 국회의원들이 대거 야스쿠니를 참배한 것은 주변국을 무시한 행위이다.
일본 정부는 야스쿠니 신사를 어느 나라에나 있는 현충 시설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과거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피해 국가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A급 전범을 합사함으로써 일본이 벌였던 전쟁을 미화하는 곳이자 독도 교과서 군대위안부 문제 등과 함께 일본의 어두운 과거사를 상징하는 시설일 뿐이다. 그런 곳을 정부 고위 관리나 국회의원들이 정기적으로 참배하는 것은 일본의 과오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일과 같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아베 신조 총리는 과감한 경기 부양책인 ‘아베노믹스’를 앞세워 침체됐던 일본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는 데 성공했다. 그 덕에 지지율이 70%를 넘어섰다. 아베 총리는 이에 편승해 평화헌법 개정, 군대위안부의 정부 간여를 인정한 고노 담화의 수정, 역사 교과서의 자국 중심 기술 강화 등을 추진해 주변국을 자극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오는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예상대로 압승할 경우 공약들을 빠르게 실천에 옮길 것이고, 한국 중국과의 관계는 더 얼어붙을 게 틀림없다. 일본은 인기 영합적인 국내 시각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국제적 시각에서 역사문제를 다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점점 더 고립될 것이다.
다음 달 서울서 열릴 예정이던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은 중국과 일본의 기 싸움으로 결국 무산됐다. 과거사 문제까지 불거져 3국 공동의 협상 채널은 거의 와해된 상태다. 한일과 중일은 당분간 냉각기간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물밑 대화마저 거부해선 안 된다. 3국은 다시 만나 심각해진 북핵 위협과 한중일 경제협력, 과거사 갈등 해소 방안 등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일본은 더이상 주변국의 인내를 시험하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