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나벤투라!… 행복과 평화 가져올 마음의 스펙 쌓으세요”
19일 경기 양평군 두물머리에 있는 액자 모양의 틀에 은발을 휘날리며 걸터앉은 유시찬 신부. 예수회에 입회하기 전까지 사귀던 한 여성과 아직까지 연락이 된다고 했다. 그는 “그분이 한 살 아래인데 아직도 싱글”이라며 “설마 나 때문에 그러겠어요. 세상사를 가끔 얘기하는 좋은 친구”라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고단한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에세이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를 최근 출간한 유 신부를 19일 경기 양평군 두물머리의 한 기도처에서 만났다. 그는 세례명의 라틴어 의미가 “Good things will come(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이라고 했다.
공교롭다. 그가 삶에 지친 이들을 위한 에세이를 낸 것이나 세례명의 뜻, 그의 삶이 겹쳐져서다. 일찍이 법관의 꿈을 꾼 그는 부산고와 서울대 신문학과, 고려대 법대 대학원을 나왔다. 수차례의 고시 낙방 끝에 호구지책으로 법원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도 고시 공부를 계속했다.
유 신부의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고, 그 역시 군에서 제대할 무렵 접한 개신교 신앙에 끌려 1980년대 초반 당시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에게서 세례까지 받았다. 그는 “제가 계속 교회 다녔으면 고려대에 소망교회, 영남 출신의 완벽한 ‘고소영’”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운명이란 게 있을까? 1987년 강릉법원 산하 동해등기소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여직원이 근무 시간에 책에 빠져 있는 게 못마땅해 잔소리를 하며 책을 낚아챘다. 잠시 뒤 자리에 앉아 도대체 무슨 내용인가 들쳐보다 둔기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이해인 수녀님의 두 번째 시집 ‘내 혼에 불을 놓아’였어요. 저는 술 담배에 찌들어 새카만 상태의 영혼인데 그 책에서 흠이 하나도 없는 하얀 영혼을 발견했어요. 운명? 어쨌든 저는 가톨릭이 알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낀 겁니다.”
그는 인근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고 예비 수도자 모임을 거쳐 1990년 예수회에 입회했다. 일본 유학을 포함해 7년의 신학 공부 뒤 43세 때인 1997년 사제품을 받았다.
어머니는 노년에 아들이 인연이 많던 병원에서 극진한 간호를 받았다. 그제야 “신부 아들 덕 좀 본다”며 웃음 짓다 세상을 떴다.
너무 출발이 늦은 것은 아니었을까? “인생이란 시간표에서 너무 늦은 것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돈과 학벌 같은 겉으로 드러난 게 아니라 자신에게 정말 행복과 평화를 줄 ‘마음의 스펙’을 쌓는 겁니다.”
이처럼 책에는 가톨릭뿐 아니라 불교적 표현, 그가 동양고전 독서를 통해 체화한 노장사상과 성리학 이론까지 등장한다. 이래도 될까?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