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토론→글쓰기→실천… 학생들 “행동 진지하게 고민”
22일 오후 인천 연수구 송도고 1학년 7반 학생들이 ‘낙태는 허용돼야 하는가’를 주제로 토론을 벌이고 있다. 송도고는 올해부터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주 4교시씩 ‘인성교육’ 수업을 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송도고 1학년 전교생은 올해부터 매주 화∼금요일 5교시에 인성교육 수업을 듣는다. 학교에서 정규과목으로 인성교육을 넣어 가르치는 일은 드물다.
○ 교사가 실천까지 하나하나 챙겨
오성삼 송도고 교장
얼핏 보기에는 일반적인 도덕이나 윤리 수업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교사는 학생이 토론하고 글 쓰는 데 그치지 않고 느낀 점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도록 챙긴다. 학교가 제작한 별도 책자에서 스스로의 행동을 점검하도록 하고 월요일에는 교사가 하나하나 확인한다. 배운 내용을 작은 실천으로라도 이행해야 한다는 점에 학생들도 공감한다.
3주째 주제(더불어 사는 사회의 조건)를 공부한 박정현 군(16)은 “중학교 2학년 초에 친구가 사소한 시비로 폭행을 당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에게 피해가 돌아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앞으로는 어떤 상황에서든 먼저 나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썼다.
김승현 군(16) 역시 6주째 주제였던 ‘인사와 언어 순화’와 관련해 이렇게 다짐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에 예절을 지켜야만 한다는 점을 배웠다. 아는 어른과 마주치면 인사를 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했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웃에게까지 먼저 인사하지는 못했다. 다음부터는 고쳐야겠다.”
최근 학교폭력 문제로 인성교육을 유난히 강조하지만 예체능 활동이나 캠페인, 캠프 같은 일회성 행사를 빼면 실질적인 인성교육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오성삼 교장이 건국대 교육대학원장을 지내고 지난해 9월 송도고에 부임하면서 인성교육을 본격화하려고 했을 때 부딪힌 문제도 같았다. 인성교육을 할 수 있는 방법은커녕 무엇이 인성교육인지 정확한 정의조차 내리기 힘들었다.
○ 교장 “美선 학교서 시민의식 가르쳐”
구체적으로는 정직 생명존중 예절 경로효친을 윤리·도덕 영역에, 준법정신 질서의식 정의감 평등의식을 민주시민의 자질 영역에 포함했다. 봉사정신과 협동정신 애국심 존중 배려 책임감을 공동체 구성원의 교양으로 넣었다.
오 교장은 “미국은 학교에서 시민의식을 공통으로 가르친다. 기본적 윤리의식이나 전통적 충효사상과 더불어 공동체와 시민으로서의 기본적 소양은 반드시 학교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인성교육에 학생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최근 자체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48.7%의 학생이 ‘인성교육에 바람직한 프로그램’이라고 응답했다. ‘그렇지 않다’는 학생 13.5%에 비해 4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유재천 군(15)은 “학교폭력이나 금연 등에 대한 내용이 기대보다 재미있었고 스스로의 행동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한다는 점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지금의 1학년 학생이 2학년이 되면 송도국제도시에 걸맞게 ‘국제사회의 이해’를 주제로 수업을 한다. 인성교육의 범위를 넓히자는 취지. 3학년 때는 2년 동안 진행한 인성교육 토론수업을 면접과 논술교육에 활용할 계획이다.
교육계는 인성교육을 막연하게 강조하는 데서 벗어나 정규 수업시간을 활용하는 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경근 고려대 교수(교육학과)는 “최근 명문대 입학생마저 인성 면에서나 사회성 면에서 기본적 자질이 부족한 때가 많다”며 “초중고교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인성을 기르는 교육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천=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