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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 경제민주화 - 엔低 - 불황 ‘3각 파도’에 갇히다

입력 | 2013-04-24 03:00:00

■ 활기 잃어가는 경제계




국회의 경제민주화 입법이 본격화되면서 기업 위기론이 제기되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일본 엔화가치 하락에 이어 국회가 ‘관치경제’ 수준의 경제민주화 법안 논의를 본격화하면서 ‘3중고(三重苦)’에 빠진 우리 기업들이 하루가 다르게 활기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 경제는 전 분기 대비 성장률이 8개 분기 연속 0%대에 머무는 난국”이라며 “기업 현장의 위기감은 상상 이상인데 정부의 경제 살리기 정책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 1∼4월 투자 절반 이하로

기업들의 활기 저하는 투자 감소로 나타났다. 동아일보가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와 함께 올 들어 이달 23일까지 상장회사의 신규 투자 관련 공시를 분석한 결과 한국 경제를 이끄는 63개 대규모 기업집단의 투자 발표는 6건에 그쳐 지난해 같은 기간 12건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액수로는 지난해 약 3조3000억 원에서 올해는 2조2000억 원으로 감소했다.

특히 10대 그룹 계열사의 신규 투자는 8건에서 3건으로 줄었다. 매년 가장 많이 투자하는 삼성그룹 계열사의 투자 공시는 한 건도 없었다. 실제로 주요 그룹들은 올해 연간 투자계획을 명확히 공개하지 않는 등 뒷짐을 지고 있다.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일본의 경쟁 업체들은 엔화 약세와 정부의 경제 살리기에 힘입어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데 우리 상황은 완전히 딴판”이라며 “그저 다그친다고 투자할 만한 기업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경제계 옥죄는 경제민주화 법안

기업들은 3중고 가운데 경제민주화를 명분 삼아 생겨나는 각종 규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 완화 등 경제 살리기 방침을 밝혔지만 국회와 경제 부처들이 과도한 규제 법안이 쏟아내면서 기업을 불안에 떨게 한다는 것이다. 총수 지분이 30% 이상이면 총수가 내부거래에 관여한 것으로 추정해 형사처벌을 하는 ‘30% 룰’이 대표적이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불공정 행위에 대한 입증도 없이 추정해 처벌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법안”이라며 “임의적인 기준으로 기업인을 잠재적 일탈 세력으로 간주하는 규제가 기업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주요인”이라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국회에 계류된 법안을 하나 둘씩 다 논의하기 시작하면 사실상 기업은 국내에서 활동하지 말라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적용 범위를 부당한 하도급 단가 인하나 발주 취소, 반품까지로 확대하는 하도급법과 보험사 및 증권사에 대주주 적격 심사를 허용하는 법안 등도 무리하게 기업을 옥죄는 법안으로 꼽힌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는 “최근의 경제민주화 입법은 관치경제를 부활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자꾸 정부가 개입하려 들면 우리 경제는 점점 경직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직격탄 맞은 대기업들

그나마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4대 그룹은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그 이하 그룹 계열사들은 3중고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정상적인 기업 활동마저 규제 대상으로 몰면서 그나마 버티려는 기업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두산은 2008년 유압기 부문 국내 1위 업체인 두산모트롤(옛 동명모트롤)을 인수해 별도 사업부문으로 편입시켰다. 두산모트롤은 현재 생산량의 45% 안팎을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에 납품하면서 성공적 수직계열화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내부거래를 규제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발목을 잡았다. 두산그룹 고위 관계자는 “안정적인 부품 공급을 위해 인수한 것마저 규제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태양광 경기 추락으로 힘들어하는 OCI도 최근 거론되는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지켜보면서 좌불안석이다. 이수영 회장의 동생 이복영 씨가 대주주인 이테크건설이 폴리실리콘 건설을 맡은 일 때문이다. OCI 관계자는 “보안 이슈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는데 악의적 내부거래로 지목돼 억울하다”며 “향후 폴리실리콘 공장 증설 등을 추진할 때도 상당한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내외 경영 환경 악화로 비상체제를 가동 중인 일부 기업에 경제민주화 규제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나 다름없다는 반응도 나왔다. STX그룹은 2000년대 중반 몸집을 키우면서 수직계열화 전략을 구사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법 조항을 근거로 내부거래나 일감 몰아주기로 시비를 걸려면 충분히 걸 수 있는 구조”라며 “시장이 죽고 회사도 어려운데 대기업이라고 규제까지 강화하면 설상가상인 상황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대그룹도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은 지난해 해운업 불황으로, 현대아산은 개성공단 중단으로 어려움이 커졌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정치권은 4대 그룹을 주요 타깃으로 삼아 때려 대는데 그 와중에 같은 규제를 받는 우리 같은 곳은 생존의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김용석·이서현·박창규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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