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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yle Diary]도전, 한국 디자이너 옷사기

입력 | 2013-04-25 03:00:00


3월 초 잡지에서 본 옷 한 벌에 꽂혔다. 국내 디자이너 ‘쟈니 헤잇 재즈’의 옷이었다. 하늘색 라인이 들어간 화이트 셔츠 원피스. 평소 좋아하는 아이템인 셔츠와 플레어스커트가 한 벌에 들어 있으니 꽂힐 만했다. 서울패션위크 무대에도 올랐던 옷이었다. 친구 결혼식에 입기로 결심했다.

우선 매장이 어디에 있는지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했다. 바쁜 직장인에겐 백화점 매장이 편하긴 하다. 서울 시내 곳곳에 있고, 주차가 편하고, 5% 카드 할인과 매달 있는 상품권 행사를 이용하면 조금이라도 싸게 살 수 있으니까. 다행히 이 브랜드는 갤러리아와 신세계백화점 편집매장에 입점돼 있었다. 퇴근하자마자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갤러리아 편집매장에 가봤다. 하지만 그 옷은 보이지 않았다. 신세계도 마찬가지였다.

남은 것은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쇼룸과 전용 온라인 숍. 쇼룸은 찾기 어렵고, 온라인 숍이 편해 보여 봄여름(SS) 제품이 뜨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4월 중순이 되어도 온라인 숍은 아직 겨울이었다. 친구 결혼식이 일주일도 안 남았다. 안되겠다 싶어 쇼룸에 전화를 했다. “그 옷 대체 어디서 살 수 있나요?”

대답은? “사고 싶으면 맞춰야 한다”였다. 원래 판매용으로 나온 게 아니라서 2주 정도 걸리고, 가격은 맞춰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진작 쇼룸에 전화해 볼 걸 그랬다. 컬렉션에도 올랐기에 당연히 파는 줄 알았다.

이런 경험은 또 있었다. 디자이너를 인터뷰할 때 본 재킷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온라인 숍이 잘돼 있는 것 같아서 ‘언젠간 뜨겠지’ 하며 기다렸는데 3월 중순까지도 인터넷은 가을겨울(FW) 세상이었다. ‘언제 한번 강남 쇼룸에 가야지’ 하고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어느새 4월이 됐다. 그 옷을 입을 시기는 이미 지났다.

아이러니하게도 희소성을 강조하는 해외 고급 브랜드들은 손 내밀면 닿을 곳 어디든 있다. 웬만한 백화점뿐 아니라 ‘네타포르테’같이 번개처럼 한국까지 배송해주는 해외 온라인 백화점을 이용해도 된다. 버버리나 마크제이콥스는 패션위크가 끝나자마자 인터넷으로 예약주문을 받는다.

반면 우리 디자이너의 옷을 한 벌 사려면 매장 검색에 전화 조사가 필수였다. 백화점에 국내 디자이너 편집매장이 있다고 한들 너무 비좁다. 한 디자이너당 열 벌이나 걸려 있을까. 대기업이 운영하는, 주차 잘되는 대형 편집매장은 모두 수입 브랜드 위주다.

불황에 시달리는 백화점도 해외에서 검증된 수입 브랜드를 선호하지, 선뜻 신진 디자이너에게 단독 매장을 내어주진 않는다. 온라인 몰이라도 잘돼 있으면 좋겠지만 모델료, 시스템 운영비, 배송시스템 등 모든 게 다 돈이 드니 디자이너 개인이 운영하긴 어려울 것이다.

A style은 지난달 열린 2013 FW 서울패션위크 기간에 눈에 띄는 예쁜 옷들을 찍어 독자들에게 소개했다. 패션쇼 자체뿐 아니라 그 안의 상품도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옷을 보고 반한 독자 중에서 몇 달 뒤 시간과 정성을 쏟아 그 옷을 사게 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예전보다 서울패션위크나 젊은 한국 디자이너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여전히 예쁜 옷을 만들고도 팔기 어렵고, 사기도 어려운 상황이 안타까웠다.

※ 앞으로 A style 기자들의 생생한 칼럼이 ‘A style Diary’를 통해 연재됩니다.

김현수 기자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