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전쟁은 고도의 정치게임… 한국 걱정하는 나라 없다
[글로벌 환율전쟁] 피도 눈물도 없는 전쟁터
3년 남짓 흐른 이달 2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IMF의 최고 자문기구인 국제통화 금융위원회(IMFC)는 “일본이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라는 문장을 합의문에 담았다. 엔화 약세를 통해 경제를 부흥시키겠다는 ‘아베노믹스’를 국제사회가 인정한 것이다.
한국이 회의장 한쪽에서 “일본의 양적 완화가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교역 상대국의 수출 경쟁력을 저하시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귀 기울여주는 나라는 많지 않았다. 일본이 주요국을 상대로 치열한 경제 외교전을 펼치는 동안 한국은 판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조차 놓친 셈이다.
‘환율전쟁’은 경제적 이해관계에 정치 역학관계까지 얽혀 있는 고도의 수싸움이다. 2010년 벌어진 ‘1차 환율전쟁’과 엔화 약세를 둘러싼 최근의 기조를 비교하면 환율 문제를 둘러싼 주요국의 냉혹한 계산을 읽을 수 있다.
1차 환율전쟁으로 일컬어지는 2010년 G20 경주 재무장관 회의에서 가장 큰 이슈는 다름 아닌 위안화 절상 문제였다. 미국은 “위안화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돼 대(對)중국 경상수지 적자가 갈수록 늘어난다”고 주장했고 중국은 “환율은 주권 문제”라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섰다. 당시 의장국인 한국은 ‘각국 경상수지 흑자 및 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4%로 묶는 데 합의하자’는 중재안을 냈지만 독일 등의 반발이 강해 무산됐다.
정부 당국자는 “지나고 보니 당시의 설전은 결국 각국의 정치적인 제스처였다”고 회상했다. 그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던 미국으로서는 자국 경기침체의 화살을 어디론가 돌려야 했다. 선진국에는 정부의 적극적 개입으로 ‘일정 수준’의 환율을 유지하던 중국과 신흥국이 눈엣가시였다. 격렬한 논쟁 끝에 재무장관들은 “시장 결정적인 환율제도를 이행하고 경쟁적인 통화 절하를 자제한다”는 문구를 합의문에 넣었지만 이를 어떻게 실행할지에 대한 내용은 담지 못했다. 미국 선거가 끝나고 유럽 재정위기가 터지면서 1차 환율전쟁은 승패를 명확히 가리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났다.
○ 엔화 약세 둘러싼 국제사회 움직임은…
3년 전이나 지금이나 ‘환율전쟁’은 경제논리만으로 전개되지 않고 있다. 당시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몰리던 중 이를 극복하기 위해 ‘경상수지 적자’ 문제를 정면으로 들고 나왔지만, 이번에는 동맹국인 일본을 지렛대 삼아 경기회복의 불씨를 살려보려는 구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바로 이 점을 파고들었다. 엔화 약세 기조는 어디까지나 내수 부양용이라고 주장하며 “디플레이션 탈출을 통해 세계경제의 회복을 이끌겠다”는 ‘착하고 노련한 논리’가 국제 사회에 먹혀든 셈이다. ‘수출 경쟁력 훼손’이라는 한국의 논리가 일부 국가의 이기주의로 비칠 수 있는 대목이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환율은 단기적으로 경제 기초체력(펀더멘털)에 따라 움직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정치외교적 역학관계가 큰 힘으로 작용한다”며 “최근의 판세를 정확하게 읽은 일본 정부의 경제외교력이 국제사회의 엔화 약세 지지를 이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국제 기축통화인 엔화 뭉치가 한국 금융시장에 본격적으로 침투하기 전에 국제 사회가 용인하는 선에서 최대한 방어막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