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가락본기는 아유타국(지금의 인도)에서 배를 타고 온 열여섯 살 소녀 허황옥과 김수로왕의 국제결혼을 전하고 있다. 허황옥은 우리 역사에 등장한 최초의 결혼 이주 여성인 셈이다. 민족 개념이 확립된 근세에는 국제결혼이 드물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변화가 시작됐다. 중국동포에 이어 동남아시아 결혼 이주 여성들이 급증했다. 오랜만에 농촌에 아기 울음 소리가 들렸다. 1990년 4710건에 불과하던 국제결혼은 2005년 4만2356건으로 늘었다. 2000년대 중반 농촌 총각의 40% 이상이 외국인 여성과 결혼했다. 국제결혼은 농촌 공동화(空洞化)를 막고 저(低)출산의 돌파구 역할을 했다.
▷사랑이 없는 국제결혼은 비극으로 막을 내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순박한 동남아 여성이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목숨을 잃거나, 베트남 새댁이 잠적해 신랑을 애태우게 만들기도 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는 한국 남성 결혼 주의보가 내려진 적도 있다. 오죽했으면 2010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엉터리 결혼’이 생기지 않도록 잘 정비하라”고 했을까. 국제결혼은 2005년을 정점으로 2011년 2만9762건까지 줄었다.
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