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내 생일에 태극기를 게양합니다.”
느닷없는 말에 거기 모인 사람들이 모두 황당해했다.
이쯤 되면 좌중은 세 그룹으로 나뉜다. “멋진 아이디어네,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는 순진파와 ‘설마’ 하는 의심파와 ‘모자란 놈’ 하는 반대파이다. 역시 아내들의 반응이 더 적극적이어서 빙긋 웃고 있는 나에게 “정말요? 정말 태극기를 달아줘요?” 하고 묻는다.
“네.”
너무 짧은 대답이 미심쩍은지 나를 빤히 쳐다보는 분들에게 조금 뜸을 들이고 나서 덧붙이는 말은 이렇다. “사실 제 생일이 8월 15일 광복절이거든요.”
그러면 그렇지, 남편들은 웃음을 터뜨리고 아내들은 “그렇지만 생일에 태극기 다는 거 괜찮은 아이디어네”라고 말한다. 대화의 분위기가 바뀌면 이번엔 내 차례다. 몇 년 전 내 생일에 드라이브를 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생일날 이렇게 묻는 아내에게 “아니”라고 대답할 남편이 어디 있겠는가. 이건 숫제 대놓고 정답을 가르쳐주는 질문이다. 당연히 정답을 말하는 남편에게 너무 쉬운 질문을 한 것이 싱거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래도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있네. 세상에 태어나서 한 사람을 기쁘게 했으니까.”
“한 사람이 아니고 두 사람을 기쁘게 한 거야.”
“두 사람? 또 한 사람은 누군데?”
그래서 나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는 것을 알았다. 적어도 두 사람이나 수지맞게 했으니 나의 생일에 태극기를 달 만도 하다. “그러니 여기 계신 분들도 이번 광복절에는 꼭 태극기를 달아주세요”라고 이야기했더니, 모두들 부창부수라고 웃으면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광복절에 곳곳에서 태극기 멋지게 휘날리면 아마 그중 일부는 나의 생일을 축하하는 태극기라고 우겨볼까 한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