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영의 영화와 심리학]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
하지만 제니(우마 서먼)의 경우는 다르다. 그녀가 숨을 빨아들이면 택시는 금방 그녀 앞으로 끌려오고 만다. 이런 숨 빨아들이기는 그녀가 가진 초능력의 아주 작은 일부다. 그녀는 하늘을 날 수 있고 눈에서 레이저 광선을 내뿜을 수도 있다. 달리는 자동차를 한 손으로 들 수 있으며 총알을 맞아도 끄떡없다. 피부에 작은 상처조차 나지 않는다.
제니는 이반 라이트만 감독의 2006년 작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단순한 초능력자가 아니다. 자신이 가진 초능력을 다른 사람들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사용하는 슈퍼히어로다.
제니의 활약상에 시민들은 “지 걸(G-girl)”을 연호한다. ‘그레이트 걸(Great girl)’인 제니의 애칭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부러워한다.
‘나도 저런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슈퍼히어로의 질투
바로 그때 나타난 남자가 매트(루크 윌슨)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 제니의 가방을 날치기한 괴한을 목숨을 걸고 쫓아가는 매트에게 제니는 빠져든다. 운명적인 사랑을 만난 것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제니는 매트에게 자신의 정체를 고백한다. 매트는 자신의 여자 친구(심지어는 잠자리도 함께하는) 제니가 ‘지 걸’이라는 사실에 감격해한다. 어쩌면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은 슈퍼히어로의 성생활을 가장 구체적으로 묘사한 첫 번째 영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완벽한 짝을 만났다는 느낌도 한순간. ‘지 걸’의 눈에 걸림돌이 포착된다. 매트의 회사 동료인 한나(애나 패리스)다. 매력 넘치는 금발의 한나는 성격도 좋다. 그녀는 매트와 동성 친구처럼 막역하게 지내는 사이다. 서로 성희롱에 가까운 장난을 주고받아도 허물이 없을 정도다. 매트의 손가락에 가시가 박히자 한나는 가시를 빼주겠다면서 아무 망설임 없이 매트의 손가락을 자기 입에 넣는다. 매트와 한나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행동이지만, 이 장면을 목격한 제니의 질투심이 폭발한다.
초능력을 지닌 슈퍼히어로가 질투심에 휩싸이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매트가 사는 아파트의 방문을 여는 대신 지붕을 뚫고 나가는 것은 기본이다. 매트의 자동차를 우주 공간으로 던져버리고, 바다에서 식인상어를 잡아와 그의 방에 투척한다. 레이저로 매트의 이마에 ‘나쁜×’라고 새겨 넣고, 그것도 모자라 고객 앞에서 기획안을 발표하던 매트를 발가벗겨 버린다.
질투는 민감한 센서
공습경보가 발령되면 사람들이 폭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과 같다. 결과적으로 질투심이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행동은 연적에게 짝을 빼앗길 가능성을 줄인다.
문제는 질투심이 과도하게 민감한 경보장치라는 것이다. 화재경보기가 작은 연기에도 경보음을 울려대듯 질투심도 아주 작은 부정의 의혹만 있어도 곧바로 작동된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경보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기도 한다. 때로는 질투심이 자신과 파트너를 모두 힘들게 만들고, 최악의 경우 오히려 좋던 관계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 ‘지 걸’의 과도한 질투심을 견디지 못한 매트도 둘 사이의 연인관계를 정리하고 만다. 관계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내보냈던 경고음 탓에 관계가 깨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건강한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질투심이 생기더라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 번 던져볼 필요가 있다. 질투를 할 만한 구체적이고 확실한 근거가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질투심으로 인한 자신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수준인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 질투심이 유발하는 가장 극단적인 행동은 살인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흔히 치정살인이라고 부르는 범죄의 원인은 대부분 질투심이 제공한 것이다.
혹시 지금 질투심에 불타고 있는가. 이것만큼은 꼭 기억하자. 질투심은 매우 극단적으로 민감하게 맞춰진 센서가 보낸 신호다.
전우영 충남대 교수(심리학) wooyoung@c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