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채팅으로 결속 다지고… 남학생보다 더 당당… 절반이 “성형도 OK” ■ 한국리서치 설문-본보 인터뷰 조사
특히 여중생들의 생각과 행동은 깜짝 놀랄 정도다. 그들은 남학생들보다 사회적 네트워크를 더 중시하고, 강력한 하위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가벼운 화장 정도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같은 또래의 남학생들보다 훨씬 외향적이다.
본보는 한국리서치의 2002∼2012년 중학생 대상 설문조사(매년 400∼600명 대상)와 지난달 실시된 집단면접조사를 바탕으로 중학생 및 교사를 인터뷰해 21세기 대한민국 여중생들의 현주소를 알아봤다.
여중생들은 남학생들보다 사회적 네트워크를 중요시한다. 현재 여중생들 사이에서 여론을 주도하는 ‘오피니언 리더’는 선후배와 친구가 많아 주변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아이들이다. 이들은 남학생 사이의 ‘일진’처럼 신체적으로 위협을 가하거나 물건을 빼앗지는 않지만 그에 못지않은 위력을 갖고 있다.
서울의 한 남녀공학 중학교에 다니는 B 양은 지난 학기 반장선거 때 친구들에게 ‘나 반장 나간다∼^^’는 딱 한 줄의 메시지를 카카오톡으로 보냈다. 그러고는 단독으로 출마해 자동 당선됐다. 네트워크가 넓은 B 양과 괜히 경쟁했다가 피해를 볼까봐 걱정한 다른 학생들이 모두 출마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여학생의 경우 함께 어울려 다니는 집단의 구성원 수도 남학생보다 많다. 경기도의 한 남녀공학 중학교 교사 J 씨는 “남학생들은 보통 두세 명이 몰려다니는 데 비해 여학생들은 7, 8명이 함께 다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여중생들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상황은 왕따처럼 혼자만 다니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며 “감성적으로 더 예민한 여학생들이 힘센 아이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집단으로 다니는 걸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K 양(중2)은 중학교 입학 이후 지금까지 앞머리로 이마를 완전히 덮는 헤어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K 양의 친구들도 모두 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K 양은 “이마를 내놓는 애들은 일진 아니면 왕따 딱 두 종류”라고 말했다. 이마를 덮는 헤어스타일은 이들의 동질성을 나타내는 ‘코드’다. K 양과 친구들은 체육대회에서 달리기를 할 때도 한 손으로 앞머리를 잡고 뛴다. 그들에겐 체육복이 들려 배꼽이 보이는 것보다 바람에 머리가 날려 이마가 보이는 것이 더 치욕적이다.
○ 알파걸로 자라나는 여중생
친구를 중요시하는 여중생들 사이에서 카톡 같은 메신저는 없어서는 안 될 의사소통 수단이다. 한국리서치의 김기주 이사는 “개인이 아닌 그룹 단위로 친구를 사귀다 보니 e메일보다 여러 명이 동시에 대화할 수 있는 메신저가 인기”라고 말했다. 메신저의 사용은 자연히 e메일의 쇠퇴를 가져왔다. e메일을 사용한다는 여중생은 2002년 89.2%에서 지난해 27.5%로 줄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P 양(중2)은 “e메일은 절대 안 쓴다”고 말했다. “e메일은 바로바로 답장이 안 오니까 채팅하는 맛이 없다”는 게 이유다.
요즘 중학생 대다수는 방과 후 학원에 다닌다. 학원 스케줄이 서로 다른 아이들은 카톡으로 대화하다 주말이면 서로 만나 나들이를 즐긴다. ‘지난 주말에 친구들과 만났다’고 응답한 여중생은 2002년 25.0%에서 지난해 47.5%로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여중생들은 남학생들보다 당연히 외모에 대한 관심이 높다. 지난해 조사에서 ‘다이어트를 생각하고 있다’는 여중생은 47.3%나 됐다. 남학생은 그 절반인 22.7%밖에 되지 않았다. 여중생들은 성형에 대한 거부감도 없었다.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성형해도 괜찮다’고 답한 여학생은 51.3%(남학생 23.9%)로 절반이 넘었다.
최근 학업 성적에서 남학생을 추월하게 된 여중생들은 자신감마저 남학생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한다’는 항목에 남학생은 24.9%, 여학생은 31.1%가 ‘그렇다’고 답했다. ‘의사표현을 잘한다’는 응답도 여학생(48.8%)이 남학생(34.2%)보다 훨씬 많았다. ‘얼마나 잘사느냐는 내가 지금 얼마나 열심히 일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답한 비율도 여학생(59.1%)이 남학생(54.2%)보다 높았다.
이렇게 커진 자신감이 성별 역할에 대한 전통적 인식을 바꿔놓을 조짐도 보이고 있다. ‘아기를 낳는 것은 내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라고 답한 여학생은 33.7%에 달했다. 5년 전인 2007년보다 약 7%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남자도 설거지 등 집안일을 해야 한다’고 답한 여학생은 71.5%로 남학생(47.5%)보다 훨씬 많았다.
문권모·김현진 기자 mike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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