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희진 산업부 기자
미스김은 낮 12시∼오후 1시 점심시간은 물론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을 칼같이 지킨다. 퇴근 후에는 어김없이 자기만의 취미생활을 즐긴다. 회사 내 인간관계를 철저히 차단하는 것도 특징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직장은 우정을 나누는 곳이 아닌 생계를 나누는 곳이다. 미스김이 고사성어를 변주해 만든 ‘회사정리 거지필반’은 ‘회사 밖의 일을 정리하지 못한 채 거지같이 끌고 들어오지 마라’는 뜻. 달리 말하면 회사 일을 집 안까지 끌고 들어오지 말라는 뜻도 된다.
미스김이 추구하는 것은 일과 삶의 철저한 분리다. 미스김의 사례는 현실에서 찾기 어렵지만 ‘일과 삶의 균형(WLB·work-life balance)’은 전 세계 직장인들의 화두다.
선진국의 기업들은 과도한 업무량, 빠른 일처리, 상사의 부당한 요구 등으로 쌓여가는 스트레스를 ‘직원이 알아서 처리할 문제’로 남겨두지 않는다. 대신 직원이 업무나 가정생활에서 받게 될 스트레스를 덜어주며 이를 생산성으로 연결시킨다. ‘회사가 스트레스를 덜어줄 테니 업무에만 집중하라.’ 일과 삶의 조화를 전략적으로 추구하는 기업의 숨은 속내다.
지난주 방문한 미국 실리콘밸리의 에버노트(Evernote) 본사는 독특한 복지제도가 인상적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무제한 휴가 정책’이다. 휴가를 언제 쓸지, 얼마나 남았는지 생각하다보면 직원과 상사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이 회사는 직원들의 가사 스트레스를 덜어주려 2주에 한 번씩 가사 도우미를 보내준다.
모든 직장인이 미스김이 될 수 없듯이, 모든 기업이 에버노트나 레고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일과 삶의 균형점을 찾지 못한 한국 직장인에게 돌파구는 필요하다. 그 대안이 미스김이 아닌, 일과 삶의 균형을 적극적으로 찾아주는 직장이었으면 좋겠다.
염희진 산업부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