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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악동뮤지션이 비틀스다

입력 | 2013-04-26 03:00:00


송평인 논설위원

난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다. 노래 한 곡 들려주는데 웬 사설이 그리 긴 지 짜증이 나서 볼 수가 없다. 악동뮤지션을 처음 본 것은 TV가 아니라 극장에서다. 영화 상영 전 나오는 광고 중 하나가 내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올아이피(AII IP)라며 노래하는 KT 광고였다. KT에 미안한 말이지만 올아이피가 뭔지는 아직도 모른다. 어쨌든 두꺼운 안경을 쓴 어리숙해 보이는 남자아이와 예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자신감은 넘치는 여자아이에게 빠져들었다. “쟤네들 뭐야?” 옆자리의 동석자에게 물었다. “요새 오디션에서 뜨는 애들이래.” 유튜브에서 처음 그들의 ‘다리 꼬지마’라는 노래를 찾아 듣고 곧 매료됐다.

악동뮤지션은 오빠 이찬혁(17)과 동생 이수현(14)으로 구성된 남매 듀오다. 2008년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몽골로 가기 전에 피아노 학원을 다닌 것 말고는 특별한 음악교육을 받지 않았다. 목사나 전도사도 아니면서 선교활동을 하는 개신교 신자들을 그냥 듣기 좋으라고 부르는 말이 선교사다. 선교사 부부는 몽골에서 아이들에게 나름대로 빡빡한 홈스쿨링을 시키다 아이들이 흥미를 잃자 사실상 방치했다. 아이들은 놀다가 그것도 지겨우면 오빠는 기타를 잡고 여동생은 피아노를 치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거기서 이들의 노래가 탄생했다. 아이들은 내버려두면 스스로 배운다고 말한 루소가 들었다면 기뻐했을 일이다.

대형 연예기획사 소속의 걸그룹 보이그룹이 대세인 요즘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기적의 아이들’이 탄생한 셈이다. 과거 TV 오디션 프로그램은 주로 남의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을 뽑았다. 그것은 사실상 ‘노래방 배틀(battle)의 TV 버전’이었다. 최근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악동뮤지션 같은 싱어송라이터가 자작곡을 불러 승자가 되는 것은 좋은 변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말한다. 쉽게 창의적 경제라든가 ‘Creative Economy’라고 하면 될 일이다. 천지창조에나 쓸 법한 거창한 말을 갖다 쓰니까 창의성을 어떻게 키울 것이냐는 본론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창조가 무엇이냐는 서론에서만 맴돌고 있는 것이다. 연예산업을 창의적으로 만들고 싶다면 악동뮤지션처럼 자신의 곡으로 자신의 감성을 노래하는 젊은이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세계에 한류의 물결을 몰고 온 케이팝과 아이돌 그룹이 다 그게 그것 같다는 얘기가 나온 지 꽤 됐다. 기획사 연습생을 거쳐 기획사 대표가 던져준 곡만 불러서는 한계가 있다.

악동뮤지션을 처음 알아본 사람은 TV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이었던 JYP의 박진영도, YG의 양현석도, SM의 보아(이수만 대리인)도 아니다. 프로튜어먼트라는 아마추어 기획사다. 악동뮤지션이 몽골의 자기 방에서 찍어 보낸 화면을 보고 금방 알아봤다. 악동뮤지션은 이곳에 초청돼 2만 원짜리 스티로폼으로 둘러싼 조악한 녹음실에서 최초의 곡 ‘갤럭시’를 녹음했다. 정보기술(IT)산업에만 인큐베이터가 있는 게 아니다. 인큐베이터 기획사가 신인 발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는 구조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악동뮤지션은 이제 대형 기획사가 탐내는 인물이 됐다. 대형 기획사는 득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17세와 14세는 아직 어린 나이다. 이들이 그 나이에 순전히 노래의 힘만으로 불러일으킨 청중의 열광을 보면 한국의 비틀스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비틀스는 10대 후반에 만나 20대 초반 첫 히트곡을 낼 때까지 영국 리버풀과 독일 하노버의 클럽에서 수년간 연주하며 곡을 만들고 다듬었다. 그 곡들은 지금 들어도 좋다. 악동뮤지션에게도 음악과 인생의 경험을 좀더 쌓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세상이 그들을 그냥 놔둘지 모르겠지만.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