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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조준 갈보리교회 원로목사 “목사는 심부름꾼… 왕이 아닙니다”

입력 | 2013-04-29 03:00:00

10년간 미국 생활 접고 귀국




미국을 중심으로 후배 목회자 교육에 주력하다 10년 만에 영구 귀국한 박조준 목사. 그는 “한국 교회는 ‘큰 대(大)’자 좋아하는 성장주의와 감투를 좇는 명예욕에서 벗어나야 바로 설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아기 젖 떼는 느낌이었죠. 젖 뗄 때 엄마가 아이를 그냥 밀쳐내고 싶어 그러는 게 아니라 불안하면서도 아이를 위해 그러는 거 아닙니까.”

박조준 목사(79)는 2003년 자신이 개척한 갈보리교회(경기 성남시 분당구) 담임목사 직에서 물러날 때의 심경을 이렇게 말했다. 이·취임식 다음 날인 그해 1월 6일 그는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에 앞서 몇 개월 전 그는 당시 개신교 풍토에서는 드물게 조기 은퇴를 전격 선언했고, 이필재 목사가 후임 목사로 결정됐다. 그 과정이 너무 빨라 신자들 사이에서는 “(우리를) 버리고 가느냐”는 불만도 나왔다.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지도력개발원을 통해 목회자 교육에 주력하다 최근 귀국한 박 목사를 22일 만났다. 그는 부인이 향수병에 걸렸을 때 한 해 한두 차례 한국을 찾았다고 한다. 여러 차례 갈보리교회의 요청이 있었지만 축도를 한 것을 빼면 일절 설교도 하지 않았다. ‘귀양 아닌 귀양’ 10년이었다.

“한국에서는 묘하게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의 관계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랑 비슷해요. 갈등과 오해로 고통 받는 교회가 너무 많아요. 은퇴를 결정하면서 후임 목사와 교회 안정을 위해 하루라도 일찍 떠났고, 그 뒤에도 제 그림자를 지우려고 했죠.”

박 목사는 10년 만인 6월 2일 갈보리교회에서 두 차례 설교한다. 자신도 약속을 지켰고, 이 목사도 은퇴하기 때문에 이제는 부담이 없기 때문이란다.

2002년 동아일보와 인터뷰한 뒤 11년 만에 만난 그는 세월 탓인지 흰머리가 많이 늘고, 귀도 어두워졌다고 했다. 하지만 개신교 현실에 대한 그의 비판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박 목사는 1973년 38세 때 한경직 목사의 뒤를 이어 개신교 장자(長子)교회로 불리는 영락교회 담임목사가 되면서 개신교의 미래를 대표할 목회자로 손꼽혔던 인물이다. 진보적인 사회적 발언과 열정적인 설교로 각광받던 그의 목회 인생은 1984년 외화밀반출 사건으로 큰 굴곡을 맞았다.

“1979년 제가 차지철 대통령경호실장 장례예배를 집전했어요. 그의 어머니가 영락교회 권사였죠. 차 실장 권유로 경호실 근무하던 전두환 씨를 위해 기도해 준 적도 있고…. 그 후 전두환 정권 때 대통령 미국 순방에 동행해라,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설교해 달라는 요청을 계속 거절하다 1984년 사건이 터진 거죠.”

지나온 목회 인생에 대한 아쉬움은 없을까? 그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제 성격에 영락교회에서 말뚝을 박을 수는 없었어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경험하면서 ‘못된 정부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가진 한경직 목사님과도 생각이 달랐어요. 영락교회는 물론이고 개신교단의 감투 자리들은 탐나지 않았어요.”

그는 초교파교회로 신앙과 평신도 중심의 새 교회를 만들자는 꿈이 담긴 갈보리교회를 개척한 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그의 영구 귀국으로 갈보리교회가 영향을 받을지에 대해 물었다. 그는 “후임 목사는 교회 내 청빙위원회가 결정할 것”이라며 “남은 생은 후배 목회자들의 교육을 위해 바치겠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일부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한 세습과 성장주의 풍토가 바뀌지 않는다면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목사가 심부름꾼이지 왕이 아니지 않습니까. 몇몇 목사는 보디가드도 있던데 이게 말이 됩니까? 큰 교회에서 목회하지 않는 목사는 실패자라는 인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나라 가면 ‘당신, 큰 교회 하다 왔느냐’고 물을 것 같습니까?”

● 박조준 목사는

―서울대 문리대 졸업
―미국 프린스턴신학교 대학원 졸업
―1973년 서울 영락교회 담임목사
―1985년 갈보리교회 창립
―2003년 갈보리교회 담임목사직에서 물러남
―현 세계지도력개발원(Global Christian Leadership Institute) 원장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