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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형부가 성폭행-성추행” 네 자매의 폭로, 공소시효 지나…

입력 | 2013-04-29 03:00:00

네 자매 “민사라도 죄 묻고 싶다”
형부는 “성폭행 모르는 일” 부인




네 자매는 각자 가슴속에 치유하기 힘든 고통을 남몰래 지니고 살았다. 그러다 노년기를 바라보는 어느 날 그 고통이 자신만의 것이 아님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네 자매 모두 과거에 큰 형부에게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했던 것이다. 자매는 짐승만도 못한 형부를 처벌할 길을 뒤늦게 찾아 나섰다. 하지만 강간 사건 공소시효(10년)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 있었다. 민사소송도 물증이 없어 승소 확률이 높지 않은 상태다. 길게는 39년을 참아온 그들의 고통에는 ‘시효’가 없지만 현행법은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엔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올 2월 다섯 자매 중 셋째(60)의 집에 지방에서 올라온 둘째(63), 다섯째(54)가 모였다. 다음 날 열리는 넷째(58)의 자녀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오랜만에 만난 자매는 새벽까지 이야기꽃을 피웠다. 평소 처갓집을 무시했던 큰 형부 A 씨(70·회사 대표)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둘째는 6, 7년 전 형부가 전화로 거친 숨소리를 내며 “오빤데, 난 네가 보고 싶어 미치겠다”고 얘기하며 일하는 가게까지 찾아와 자신을 수차례 성희롱했다고 털어놨다. 둘째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셋째가 무겁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전남에 살던 자매들은 농사짓는 부모 아래서 컸다. 1970년대 초 첫째 언니(66)가 중매로 서울에서 택시운전사로 일하던 A 씨를 만나 서울로 시집갔다. 아버지는 자매들에게 “큰언니 내외는 부모나 매한가지니까 순종해야 한다. 형부를 아버지 대하듯 하라”고 교육했다.

셋째는 21세 때인 1974년경 첫째 언니 산후조리를 도우러 서울에 갔다. 형부는 셋째와 단둘이 있을 때면 “아이고, 우리 처제 예쁘다”며 몸을 쓰다듬었다. 셋째가 고향으로 돌아가기 며칠 전 형부는 “시골 가기 전에 서울 구경 시켜주겠다”며 셋째를 데리고 나섰다. 서울 구경을 마치자 “좀 쉬었다 가자”며 여관으로 이끌었다. 셋째는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에 천둥이 친다. 창피하니까 소리도 못 지르고 무슨 짓인지도 모르면서 당했다”고 기억했다.

셋째는 뒤늦게 임신 사실을 알았지만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홀로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유증 때문인지 중매 결혼한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갖지 못했다. 셋째는 “평생 남편에게 아이를 갖지 못한다고 타박당하다가 2005년 이혼했다”며 “형부가 ‘셋째가 이혼녀라 집안 망신시킨다’고 욕할 때도 다른 가족을 생각하며 참았다”고 했다.

넷째는 12년 전 ‘남편 일로 상의하자’는 형부 전화를 받고 나갔다가 형부의 사무실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이후 넷째는 성폭행 충격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으며 수면제를 먹어야 겨우 잠이 든다고 했다. 막내인 다섯째는 큰언니 집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다 형부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한 뒤 친구 집으로 거처를 옮겼고 큰언니 가족과는 왕래를 꺼려왔다.

형부가 ‘집안 어른’이라는 탈을 쓴 채 처제들 모두를 상대로 몹쓸 짓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자매들이 뒤늦게 형부를 처벌해 달라고 나섰지만 가장 최근 사건도 12년 전이라 공소시효는 이미 지난 뒤였다. 자매는 자신들의 성폭행 피해 사실을 정리해서 첫째 언니 집으로 편지를 보냈다. 이후 언니와 형부에게 “성폭행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수십 차례 연락했다. 그러나 언니는 지난달 “형부를 왜 괴롭히느냐”며 자매들과 마지막으로 통화한 뒤 동생들과 연락을 끊었다.

형부 A 씨는 9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셋째가 산후조리를 도우러 왔을 때는 우리 부부가 단칸방에 살 때였는데 어떻게 한 방에서 성추행을 하느냐. 여관 성폭행은 알지도 못하는 일”이라며 “오히려 자매들이 남편 외에 다른 남자를 만날 정도로 행실이 불량했다”고 자매들의 주장을 부인했다.

그는 처제들에게 ‘(처제들 주장이 맞다면) 여자가 궁둥이를 들이대고 유인하면 잡놈들은 그 유혹에 모두 끌려 목적을 다 이뤘던 사실이 있다고 전해 너의 집안 가보로 역사에 남겨주기를 원한다’는 내용증명을 보내기도 했다. 자매들은 “시골에서 자라 공소시효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다”며 “민사법정에 세워서라도 판사 앞에서 형부의 죄를 묻고 싶다”고 말했다.

자매를 돕고 있는 여성인권전문 김재련 변호사는 “친족 성폭행 사건에선 가해자가 동시에 보호자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쉽게 알리지 못해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이 많다”며 “아동 및 장애 여성뿐 아니라 친족 간 성폭행 사건도 공소시효 기간을 늘리거나 폐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정된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13세 미만 여성이나 장애가 있는 여성을 성폭행한 성범죄자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됐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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