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자매 “민사라도 죄 묻고 싶다”형부는 “성폭행 모르는 일” 부인
올 2월 다섯 자매 중 셋째(60)의 집에 지방에서 올라온 둘째(63), 다섯째(54)가 모였다. 다음 날 열리는 넷째(58)의 자녀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오랜만에 만난 자매는 새벽까지 이야기꽃을 피웠다. 평소 처갓집을 무시했던 큰 형부 A 씨(70·회사 대표)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둘째는 6, 7년 전 형부가 전화로 거친 숨소리를 내며 “오빤데, 난 네가 보고 싶어 미치겠다”고 얘기하며 일하는 가게까지 찾아와 자신을 수차례 성희롱했다고 털어놨다. 둘째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셋째가 무겁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전남에 살던 자매들은 농사짓는 부모 아래서 컸다. 1970년대 초 첫째 언니(66)가 중매로 서울에서 택시운전사로 일하던 A 씨를 만나 서울로 시집갔다. 아버지는 자매들에게 “큰언니 내외는 부모나 매한가지니까 순종해야 한다. 형부를 아버지 대하듯 하라”고 교육했다.
셋째는 뒤늦게 임신 사실을 알았지만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홀로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유증 때문인지 중매 결혼한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갖지 못했다. 셋째는 “평생 남편에게 아이를 갖지 못한다고 타박당하다가 2005년 이혼했다”며 “형부가 ‘셋째가 이혼녀라 집안 망신시킨다’고 욕할 때도 다른 가족을 생각하며 참았다”고 했다.
넷째는 12년 전 ‘남편 일로 상의하자’는 형부 전화를 받고 나갔다가 형부의 사무실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이후 넷째는 성폭행 충격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으며 수면제를 먹어야 겨우 잠이 든다고 했다. 막내인 다섯째는 큰언니 집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다 형부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한 뒤 친구 집으로 거처를 옮겼고 큰언니 가족과는 왕래를 꺼려왔다.
형부가 ‘집안 어른’이라는 탈을 쓴 채 처제들 모두를 상대로 몹쓸 짓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자매들이 뒤늦게 형부를 처벌해 달라고 나섰지만 가장 최근 사건도 12년 전이라 공소시효는 이미 지난 뒤였다. 자매는 자신들의 성폭행 피해 사실을 정리해서 첫째 언니 집으로 편지를 보냈다. 이후 언니와 형부에게 “성폭행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수십 차례 연락했다. 그러나 언니는 지난달 “형부를 왜 괴롭히느냐”며 자매들과 마지막으로 통화한 뒤 동생들과 연락을 끊었다.
형부 A 씨는 9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셋째가 산후조리를 도우러 왔을 때는 우리 부부가 단칸방에 살 때였는데 어떻게 한 방에서 성추행을 하느냐. 여관 성폭행은 알지도 못하는 일”이라며 “오히려 자매들이 남편 외에 다른 남자를 만날 정도로 행실이 불량했다”고 자매들의 주장을 부인했다.
자매를 돕고 있는 여성인권전문 김재련 변호사는 “친족 성폭행 사건에선 가해자가 동시에 보호자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쉽게 알리지 못해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이 많다”며 “아동 및 장애 여성뿐 아니라 친족 간 성폭행 사건도 공소시효 기간을 늘리거나 폐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정된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13세 미만 여성이나 장애가 있는 여성을 성폭행한 성범죄자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됐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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