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역사도발에 한미일-한중일 공조 흔들 정부, 동북아 다자협력 새판짜기 총력
한미일, 한중일은 서서히 지고, 한미중은 빠르게 뜨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한미중 3국 간 협력이 북한 문제의 해결을 비롯해 한반도 정세를 결정지을 핵심 동력이 될 것으로 보고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다. 안보협력인 한미일 공조와 한중일 3국의 지역 및 경제 협력이 일본의 역사 왜곡 도발, 중-일 간의 영토 분쟁 등으로 흔들리면서 한미중 협력이 한국 외교의 핵심 기대주로 떠오른 것이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28일 “박근혜정부의 2대 외교 어젠다인 한반도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평화협력구상 모두 미중의 협조가 결정적”이라며 “긴 안목으로는 한반도 통일까지 한미중의 삼각 틀 안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정부가 한미중의 3각 협력에 전략적으로 많은 의미를 두고 관련 업무를 추진 중”이라며 “장기적으로 박근혜정부의 외교적 유산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최근 미국 중국의 고위 인사들과 만날 때마다 한미중 3국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윤 장관은 27일 방한한 윌리엄 번스 미국 국무부 부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한미, 한중, 미중 간 고위급 전략대화가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앞서 24일 중국 베이징에서 리커창(李克强) 총리 등을 만나 한미중 3국 전략대화를 공식 제안하면서 그 필요성을 역설했다.
▶본보 4월 24일자 A3면 정부 ‘韓美中 전략대화’ 中에 첫 제안
외교부 당국자는 “외교부 일각에서 ‘미국이나 중국을 압박하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으니 윤 장관이 (한미중 강조를) 자제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전했다.
정부의 이런 외교정책 기조는 최근 일본이 유례없이 높은 강도로 과거사 도발을 이어가면서 더 탄력을 받는 분위기다. 7월 참의원 선거 등을 앞둔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정치적으로 계속 활용할 가능성이 큰 만큼 일본과의 관계 악화가 장기화될 수 있다고 정부는 보고 있다. 중국은 이미 5월로 예정됐던 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 대한 거부 의사를 밝혔고 다음 달 3일 개최할 예정이던 3국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의 참석도 전격 취소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은 일본 정부에 우회적으로 경고의 뜻을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한미중의 결속은 북한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그런 식으로 하다간 동북아의 왕따가 될 수도 있다’는 엄중한 경고를 보내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한국의 한미중 협력 제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1월에만 해도 ‘과연 한미중 전략대화가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최근 한중 간 1.5트랙(반관반민) 전략대화를 위해 방한한 중국 대표단은 한미중 전략대화를 먼저 언급해 한국 측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연세대 한석희 교수는 “한미중의 협력 틀이 갖춰지면 한반도 현안은 물론이고 통일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향해 한국이 상황을 주도할 여건이 마련되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한미중 3각 협력을 본격화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중국이 환경문제, 재난 대처 같은 비정치적 분야에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핵심 안보 이슈를 한미중 3각 틀 내에서 다루는 것은 여전히 꺼릴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정부의 한미중 전략대화 제안에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으로서는 중국과 일본이 극한 대립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동맹국인 일본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결국 한미중 3국 협력의 성사 및 성공 여부는 한국이 어떻게 한국 주도 외교, ‘키(KI·Korea Initiative) 디플로머시’를 발휘해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성신여대 김흥규 교수는 “한국이 한미중의 3각 협력을 주도적으로 끌어갈 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미국 중국의 들러리 신세가 될 수 있다”며 “한미, 한중의 양자 협력부터 확실히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잘못하면 고래(미-중) 싸움에 새우등(한국) 터지는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