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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대기업에 쌓인 현금, 불확실성과 규제에 막힌 투자

입력 | 2013-04-29 03:00:00


기업들이 이익이 나도 투자를 하지 않는다. 작년 말 10대 그룹의 현금성 자산은 124조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10대 그룹의 유보율(잉여금/자본금)도 1442%로 재무 상태가 해마다 좋아지고 있다. 그러나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현금성 자산 중 47조 원이 단기금융상품에 가 있다.

투자 부진의 원인으로 세계경제 부진이나 내수회복 지연만 꼽는 건 단견이다. 국내외 경기상황과 무관하게 ‘과소 투자가 장기고착화’하는 현상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1970∼80년대 10∼20%대에 이르던 설비투자 증가율은 2000년대 들어 해마다 줄어들어 작년엔 오히려 6.5%나 감소했다. 기업들은 투자를 해도 나라 밖에서 한다. 2003∼2012년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액은 연평균 17.2%씩 늘었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 늪에 빠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투자는 정부나 여론이 강요해서 될 일이 아니다. 지난번 이명박 정부가 대놓고 밀어붙일 때도 기업들은 투자를 하지 않았다. 딱히 투자할 데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만큼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게 시급하다.

정부는 창조경제를 외치고 있지만 기업들은 “뭘 하겠다는 것인지 도대체 모르겠다”고 한다. 범위가 너무 넓어 선택과 집중이 안 되기 때문이다. 정책의 각론이 필요하다. 의료 교육 관광 등 고부가 서비스 산업에 대한 낡은 진입 규제를 과감히 풀어야 한다. 바이오, 신소재 등 신성장사업에 대한 투자를 유도하는 정책도 함께 펼쳐야 한다. 14개 정부 부처와 경제 5단체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수도권 규제, 입지 규제, 환경 규제를 재검토하겠다는 것은 바람직하다.

일부 대기업은 특권층 노조가 투자를 막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차 한 대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울산 공장 31.3시간, 미국 앨라배마 공장 14.6시간, 중국 베이징 공장 19.5시간이지만 노조에 가로막혀 공정 합리화를 못 한다. 그랜저의 너트를 조이던 노조원을 쏘나타 생산라인에서 너트를 조이도록 옮기는 것조차 회사가 맘대로 할 수 없다. 기업들이 추가 투자는커녕 기존 설비를 해외로 옮기지 않는 것만도 고마워해야 할 판이다.

뭘 해야 할지 정책 방향이 모호하고, 사업 전망이 있는 곳에선 진입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특권층 노조는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는다. 기업들이 돈을 쌓아 놓고도 투자를 주저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