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이익이 나도 투자를 하지 않는다. 작년 말 10대 그룹의 현금성 자산은 124조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10대 그룹의 유보율(잉여금/자본금)도 1442%로 재무 상태가 해마다 좋아지고 있다. 그러나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현금성 자산 중 47조 원이 단기금융상품에 가 있다.
투자 부진의 원인으로 세계경제 부진이나 내수회복 지연만 꼽는 건 단견이다. 국내외 경기상황과 무관하게 ‘과소 투자가 장기고착화’하는 현상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1970∼80년대 10∼20%대에 이르던 설비투자 증가율은 2000년대 들어 해마다 줄어들어 작년엔 오히려 6.5%나 감소했다. 기업들은 투자를 해도 나라 밖에서 한다. 2003∼2012년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액은 연평균 17.2%씩 늘었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 늪에 빠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투자는 정부나 여론이 강요해서 될 일이 아니다. 지난번 이명박 정부가 대놓고 밀어붙일 때도 기업들은 투자를 하지 않았다. 딱히 투자할 데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만큼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게 시급하다.
일부 대기업은 특권층 노조가 투자를 막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차 한 대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울산 공장 31.3시간, 미국 앨라배마 공장 14.6시간, 중국 베이징 공장 19.5시간이지만 노조에 가로막혀 공정 합리화를 못 한다. 그랜저의 너트를 조이던 노조원을 쏘나타 생산라인에서 너트를 조이도록 옮기는 것조차 회사가 맘대로 할 수 없다. 기업들이 추가 투자는커녕 기존 설비를 해외로 옮기지 않는 것만도 고마워해야 할 판이다.
뭘 해야 할지 정책 방향이 모호하고, 사업 전망이 있는 곳에선 진입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특권층 노조는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는다. 기업들이 돈을 쌓아 놓고도 투자를 주저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