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호 논설위원
더 놀라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작년 7월 “앞으로 10년간 서울에 8000개의 협동조합이 서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히는 등 조합 확산에 올인 하는 형국이다. 다른 지자체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열기가 뜨겁다. 이 정도면 ‘협동조합의 나라’라고 불릴 만하다.
협동조합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협동조합은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판매 구매 등을 협동해 함으로써 조합원 권익을 향상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사업조직이다. 그냥 쉽게 말하면 ‘계(契)를 제도화한 것’이다. 계 깨지듯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다. 우후죽순처럼 세워지고 있는 협동조합이 대폭발의 장약을 쟁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협동조합이 잘되는 분야도 몇 있다. 유기농산물을 공급하는 생협이 좋은 사례다. 대량유통망보다 비싸지만 조합원이 직접 생산해 공급하므로 믿을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공동육아 대안교육 노인돌봄 등도 마찬가지다. ‘신뢰성이 중요한 가치공유형 서비스’는 협동조합과 잘 어울린다. 이처럼 차별화된 입지와 경쟁력을 확보해야 생존이 가능하다. 자조와 연대의 아름다운 이상에 취해 섣불리 덤비거나, 경제적 자생력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좋은 일만 하려다가는 곧 무너진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이 정치 오염이다. 서울시는 작년 11월 권역별 지원센터를 4곳 지정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중 한두 개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반대시위 때 주력군 역할을 했다. 당시 광우병 사태는 이들이 논리를 구성하고 주장을 편 후 MBC ‘PD수첩’이 가세함으로써 폭발했다. ‘유모차 시위’도 이들의 작품이다. 민중당이 와해된 1992년 조직의 상당 부분이 생협으로 전환했다. 덕분에 조합 운동이 활성화됐다. 그러나 광우병 시위 같은 정치 편향을 또 보인다면 곤란하다.
당장은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조합운동이 걱정이다. 지자체는 조합에 대해 2년간 최대 8000만 원까지 지원할 수 있다. 지자체 도움을 받은 조합이 자연스럽게 단체장의 정치 사조직화할 수 있는 구조다. 일선에서는 “정치적 야심이 있는 사람이 조합을 조직하는 사례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런 조합은 생명력이 길 수 없다.
정부나 지자체가 조합을 돕는 것은 좋다. 그러나 돈이나 일감을 대주면 여기에 기대 사는 ‘의존적 생태계’가 형성된다. 자조 자립의 정신은 증발하고 만다. 현장에 가보면 협동조합에 어울리는 사업 아이디어가 있지만 구슬을 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조합을 만들 줄 모르며, 경영도 문제해결도 못하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들을 도와 제 궤도에 올려주는 마중물 역할에 주력해야 한다. 지역별 밀착 지원조직이 다수 필요하다. 비영리기구(NPO)로 운영돼야 하며 기업 은퇴자들이 적격이다. 정부는 조합을 직접 돕기보다 NPO를 육성하는 일을 해야 한다. 조합은 밑에서 올라오는 것이다. 그게 정치 오염을 피하고 세금 누수를 줄일 뿐 아니라 협동조합 정신에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