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재호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오늘 우리가 쿠리치바를 꿈꾸는 것은 쿠리치바에 자가용이나 지하철 대신 간선급행버스(BRT)라는 획기적인 대중교통 시스템이 달리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제성장률이 브라질 평균보다 45%나 높고, 24시간 보건소에 30여 개의 공공도서관, 5000∼8000권의 책과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지혜의 등대’ 50곳, 100여 개 가까운 박물관과 문화시설이 있기 때문만도 아니다. 도시 공동체가 사회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함께 모아서 도시 진화를 이루어낸 현장이 바로 쿠리치바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고민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문제다. 1955년부터 1963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712만 명으로 인구의 15%나 된다. 최근 민간부문 평균퇴직 연령이 52.6세라는 통계에 따르면 상당수가 퇴직했거나 퇴직을 앞두고 있다. 고도성장기에 치열한 경쟁을 몸으로 겪으며 우리 경제를 세계 13위로 끌어올리는 데 혁혁한 공헌을 한 이들이 이제는 무대 뒤로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인생이모작은 어떤가.
그러니 안락해야 할 베이비부머들의 노년은 위기 그 자체다. 황혼이혼이 급증하고, 65세 이상 노인빈곤율은 76.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5.0%)의 세 배가 넘는다. 1990년 65세 노인자살률이 인구 10만 명당 14.3명이던 것이 2012년 79.7명으로 20여 년 만에 여섯 배 가까이로 늘었다. 일본의 17.9명, 미국의 14.2명에 비하면 네다섯 배 이상이나 된다.
국가가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생을 마칠 때까지 존엄을 유지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박근혜정부의 국정비전이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라고 하면 이에 걸맞은 희망을 줘야 한다. 쿠리치바의 모델을 원용하면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가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는 도시를 마련해 주는 것이 대안이다.
이제 서울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인구 10만 명 정도의 에코 신도시들을 개발하자. 에코 신도시는 병원, 공원, 탁아소, 문화공간, 공공도서관과 북카페, 트램, 자전거와 보행자 전용도로, 24시간 거리, 생필품 직영소매점 등 다양한 사회 인프라를 갖춘 미래형 도시로 디자인해야 한다. 돈을 나눠주는 것보다 이런 도시를 만들어주면 부부가 100만 원 내외의 연금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하다.
베이비붐 세대의 평균 부동산 자산이 3억2000만 원이라는 통계가 있다. 최근 주목받는 땅콩집처럼 소규모 주택이나 아파트를 1억 원 정도에 제공하면 나머지는 노후자금으로 쓸 수 있다. 이 경우 ‘빌라 지 오피시우스’라는 쿠리치바의 주상복합형 건물이나 독일의 패시브 하우스처럼 최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개념의 주택이 모델이 될 수 있다. 태양광으로 전기를 생산해서 현재 사용하는 에너지의 10분의 1로도 냉난방이 가능한 주택이다. 대도시의 소비 거품을 제거하고 예술적 문화 인프라와 자연환경이 공존하는 슬로 시티, 공동텃밭을 가꾸고 영화나 예술공연도 감상할 수 있는 에코 도시도 결코 꿈이 아니다.
염재호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jhyeom@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