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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선佛畵 연결고리 찾았다

입력 | 2013-04-30 03:00:00

■ ‘윤왕좌 수월관음도’ 발견 의미




고려∼조선佛畵 연결고리 찾았다

굳은 입술엔 묘한 미소가 입가에 맺혔다. 정면을 바라보는 눈빛은 지긋한 듯 찌릿하다. 인도 신화 속 제왕인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취했던 자세(윤왕좌·輪王坐)여서일까. 편안한 듯 다부지게 세상을 내려다본다. 그 기세를 아우르며 감싸는 천의(天衣)의 보드라움이란. 발아래 앙증맞은 선재 동자의 합장 따라 어느새 두 손이 모아진다.

정우택 동국대 교수(동국대박물관장)가 올해 초 찾은 윤왕좌 수월관음도는 일본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숨겨진 존재’였다. 30여 년 전 나온 한 출판물에 자그마한 흑백 사진이 실리긴 했으나 정 교수가 이를 발견할 때까지 누구도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 14세기 후반에 그려진 관음보살은 그렇게 누군가 자신을 찾아오길 600여 년을 기다렸다.

일본 후쿠오카 현 조텐(承天)사 수월관음도가 이토록 빼어난 아름다움을 갖추고도 주목받지 못한 것은 선입견 탓이 컸다. 그간 고려불화에서 관음보살은 45도쯤 왼쪽으로 몸을 기울인 채 반가좌를 튼 자세가 대부분이었다. 정면을 향해 무릎을 세우고 한 손을 짚은 윤왕좌 관음은 18세기 조선불화에서 인기를 끌었던 자세였다. 이 때문에 이 불화도 정확한 조사 없이 흔한 조선불화 가운데 하나려니 지레짐작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고려 수월관음도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일본 야마토(大和)문화관 소장 작품(14세기 전반 추정)과 비교해 보면 조텐사 불화의 가치가 여실히 드러난다. 보살이 걸친 천의의 형상과 착의법이 거의 똑같고, 왼손으로 천 자락을 누르듯 잡은 방식도 일치한다. 투명한 베일을 바위 좌우로 흘러내리게 한 기법, 흔한 거북등무늬를 생략하고 국화무늬로만 감싼 과감성도 조선불화에선 찾기 힘들다.

이 수월관음도는 이 땅의 불화 전통이 켜켜이 이어져 내려왔음을 증명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윤왕좌는 조선불화에 많이 등장하고 고려불화엔 없다 보니 그동안 학계는 윤왕좌의 원류를 15세기 중국 법해(法海)사 벽화를 비롯한 명대 불화로 짐작해왔다. 하지만 조텐사 불화의 등장으로 고려와 조선을 잇는 소중한 명맥을 되찾은 셈이다.

불화가 발견된 조텐사가 한반도와 역사적 관계가 많은 곳이란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양국의 교류 거점으로도 자주 이용돼 일본행록(日本行錄)을 썼던 조선통신사 송희경(宋希璟)이 이 사찰에 대한 시를 짓기도 했다. 국내에는 ‘승천사 동종(承天寺 銅鐘)’으로 유명한 1065년 고려 동종과 또 다른 고려불화를 소장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인연이 바탕이 됐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