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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노인 하루 19명 실종… GPS추적 대안 부상

입력 | 2013-04-30 03:00:00

■ 2012년 실종신고 6955건… 매년 증가




“치매에 걸린 남편이 어제 나갔는데 돌아오질 않아요. 좀 찾아주세요.”

2월 18일 서울 구로경찰서에 실종신고가 들어왔다. 성모 씨(74·서울 구로구 고척동)가 “바람 쐬러 간다”며 집을 나선 건 전날 오전 10시경. 성 씨가 사라진 건 처음이 아니었다. 평소 멀쩡하다가도 가끔 치매 증상이 나타나면 무작정 걸어다니는 통에 아내의 속을 태운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경찰에 실종신고를 한 것만도 세 번째. 성 씨는 비교적 가까운 서울 한강 둔치는 물론이고 경기 광주시 곤지암, 경기 광명시에서도 발견됐다.

다행히 성 씨는 무사했다. 이번에는 인천이었다. 이날 오후 7시경 인천 중구 인현동의 한 슈퍼마켓 앞에서 배회하는 성 씨를 이상하게 본 가게 주인이 경찰에 신고한 것. 집을 나선 지 33시간 만이었다. 그는 어떻게 그곳까지 갔는지는 물론이고 인천에 갔다는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못했다. 코가 다 해진 밤색 구두만이 그 먼 길을 걸어갔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했다.

성 씨의 부인은 안도하면서도 “내가 돈을 벌어야 해 하루 종일 감시를 할 수도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고 경찰관계자는 전했다. 평상시 부인이 할 수 있는 건 신발을 감춰두는 일 뿐이었다. 신발이 눈에 띄지 않으면 못 나가겠지 하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기어코 신발을 찾아 신고 밖으로 나갔다. 근처 공원을 산책하는 것까지 막을 수 없는 데다 평소 10번 집을 나가면 9번은 무사히 돌아왔기 때문에 차마 밖에서 문을 잠글 생각은 못했다. 함께 있을 때도 부인은 방안에 신문지를 깔고 남편의 신발을 자신의 눈에 띄는 곳에 뒀다. 혹시 잠시 한눈을 판 사이 혼자 나갈까봐 걱정돼서다.

이런 피 말리는 고통은 성 씨 부부만 겪는 게 아니다. 치매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실종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치매 노인 실종신고는 6955건이었다. 이 중 실종자를 찾지 못한 사례도 22건에 이른다.

목적지 없이 무작정 걷는 건 치매 노인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경찰에 따르면 실종 치매 노인은 특히 찾기 어려운 부류의 실종자다. 외관상 ‘치매 노인’임을 알아볼 수 없는 데다 팔찌나 목걸이 인식표를 만들어줘도 스스로 떼거나 잃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은 탓이다. 대부분 1∼2일 내에 주거지 인근에서 발견되지만 실종자가 혼자 위험한 도로변이나 야산으로 발길을 옮겨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1월 15일 오후 9시경 서울 금천구에서 사라진 치매 노인 김모 씨(70)는 다음 날 0시 40분경 경기 시흥시 서해안고속도로 상행선 조남분기점 부근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쓰러진 채 발견됐다. 고속도로순찰대가 병원으로 옮겼지만 김 씨는 숨졌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치매 노인 실종을 예방하기 위해 서울시가 보급 중인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단말기’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29일 밝혔다. 서울시는 2011년부터 치매 노인이 실종됐을 때 위치와 이동경로를 확인할 수 있는 ‘위치추적 단말기’를 보급하고 있다. 해당 서비스는 서울시 25개 구의 치매지원센터에서 신청할 수 있으며 기기는 무료로 제공하고 월 이용료 9900원만 부담하면 된다. 저소득층에는 무료로 지원한다.

그러나 현재 이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은 343명(29일 기준)에 불과하다. 서울시에 등록된 65세 이상 치매 노인 10만608명(2012년 기준)의 0.34% 수준. 경찰은 서울시와 협조해 2회 이상 실종된 노인을 대상으로 해당 서비스를 신청하도록 적극 홍보할 방침이다.

하지만 현재의 서비스를 확대하는 수준으로는 치매 노인 실종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치매지원센터 관계자들은 “큰 단말기를 오래 휴대하기가 쉽지 않다. 옷에 붙여준 이름표도 떼버리는 마당에 치매 노인이 항상 단말기를 휴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단말기의 크기는 가로 4.6cm, 세로 6.5cm다. 위치확인을 하려면 먼저 인터넷에서 등록 작업을 거쳐야 하는 점도 단말기 사용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의 위치추적 서비스는 2009년 아동용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것을 치매 노인용으로 바꾼 것이기 때문에 치매 노인에게 적합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며 “불편사항들을 반영해서 추가 확대 보급을 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애진·김호경 기자 ja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