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조 통상임금 소송戰 파장
지난해까지 삼화고속 10년차 근로자의 연봉은 4140만 원 수준이었다. 기본급 1320만 원, 정기상여금 840만 원, 근속수당 120만 원, 초과근무 수당 1150만 원에 나머지 수당 등을 합한 액수다. 만약 근로자들이 승소해 상여금까지 통상임금에 포함시킬 경우 연봉은 1000만 원 가까이 오르게 된다. 소멸시효가 살아 있는 3년치 소급분까지 지급하려면 60억 원가량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아직 소송을 내지 않은 근로자까지 가세하면 부담은 110억 원으로 불어나게 된다. 이 회사는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100억 원가량의 영업적자로 현재 보유한 현금 자산이 28억 원에 불과하다. 패소할 경우 부동산과 노선을 팔더라도 경영이 불가능하다는 게 회사 측의 주장이다.
○ 발단은 기존 판례 깬 대법원 판결
통상임금 소송의 핵심은 초과근무수당 인상이다. 고용노동법상 초과근무수당을 정할 때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산정하고 있어 상여금 등이 기본급에 포함되면 초과근무 수당이 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삼화고속의 10년차 근로자의 경우 기본급 1320만 원을 근거로 초과근무수당을 산정해 왔지만 상여금과 근속수당, 식대 등이 포함되면 초과근무수당의 근거가 되는 통상임금이 2490만 원으로 상향된다고 근로자 측은 주장하고 있다.
○ 팽팽히 맞선 재계와 노동계
재계는 고정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기업 부담이 급격히 증가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노동부와 통계청의 각종 노동통계 자료를 기초로 분석한 결과 기업들이 통상임금 산정범위에 고정상여금을 포함시키면 3년치 소급분으로만 최소 38조5509억 원을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향후 지급분은 뺀 액수다. 경총은 임금상승률을 감안하면 기업 부담이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대기업보다 자금사정이 열악한 중소기업도 소급분으로만 14조4000억 원을 일시에 부담해야 해 줄도산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경총은 주장한다. 한국GM은 패소할 경우에 대비해 지난해 8100억 원을 ‘장기미지급 비용’으로 회계처리해 둔 상태지만, 삼화고속과 같은 중소기업은 법원 판결에 회사의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반면 노동계는 “대법원의 판결이 합리적인 결정인 만큼 정부와 기업이 통상임금에 대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의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로 통상임금의 범위 조정을 포함시켰다. 통상임금 범위 조정과 이를 근거로 한 각종 법정수당 지급을 요구하는 공동 임단투 지침을 지난달 마련해 하달하기도 했다. 또 최소 3년 이상의 미지급 임금 지급도 요구토록 했다.
○ 정부 대책 마련 시급
통상임금을 규정하는 문제가 기업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이슈로 부상하면서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근로기준법에 통상임금의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아 문제가 생긴 만큼 정부가 관련법을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삼화고속의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재판부가 받아들이더라도 위헌 여부에 대한 결정은 적어도 수개월 뒤에나 나올 수밖에 없다. 결정이 더 늦어질 경우 1년 넘게 대다수 기업들은 이 문제를 놓고 혼란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위헌결정 여부와 관계없이 정부가 노사정 합의를 통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의 이병한 변호사는 “통상임금 문제를 개별적인 판결로 해결할 경우 경영 현장에서 극심한 혼란이 생길 수 있다”며 “노사정이 이 문제에 대해 충분히 논의한 뒤에 법 조항을 보완하거나 대체 법안을 만들어 시급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