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 경제부 기자
배 씨의 민원은 복합적이었다. 유명 연필회사 부사장까지 지낸 그는 은퇴 후 개인사업을 시작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금융자산과 부동산만 잘 유지하면 노후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도전을 택했다. 회사를 차린 것이다. 의욕이 넘쳤지만 금융이 발목을 잡았다.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고 기술보증기금의 보증까지 받아 자금을 끌어모았지만 한번 연체가 시작되자 은행의 ‘이자 폭탄’이 시작됐다. 연대보증을 선 아내는 신용불량자가 됐다. 신용불량자로 등록되자 연 10% 초반이던 이자율이 최고 연 20%로 치솟았다. 이른바 ‘약탈적 대출’을 직접 느낀 것이다.
배 씨와 같은 1941년생인 강계화 씨는 운이 좋았다. 경기 구리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배추를 팔던 그녀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0년 시장을 찾았을 때 대통령에게서 청와대 시계를 선물로 받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 전 대통령은 “힘들면 미소금융에 가 보시라”고 조언했고 강 씨는 500만 원을 일사천리로 빌렸다. 지금 강 씨는 여전히 어렵다. 대통령이 다녀간 그날 이후 공무원을 만난 적도, 제대로 된 금융상담을 은행에서 받은 적도 없다. 강 씨는 미소금융이 고맙긴 하지만 ‘빚내서 빚 갚는’ 악순환 고리를 끊을 근본 해결책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당국에서 돈 잘 빌려 잘 쓰는 방법을 알려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의 관청은 배 씨와 강 씨가 제기한 것과 같은 민원을 귀찮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너무 포괄적이거나 사소해 보여서다. 배 씨가 먼저 찾아간 금융감독원에선 “금융위에 가보라” 했고 바쁜 금융위에는 막무가내로 보이는 노인의 사연까지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강 씨에게 관청이나 은행은 여전히 껄끄러운 곳이다. 오죽하면 몇 년 만에 전화한 기자에게 “금리가 낮은 금융대출을 소개해 달라”고 했을까. 금융당국과 은행은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동분서주하고 있다. 멀리 갈 것 없다. 민원인의 애달픈 호소에 답이 있다.
홍수용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