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韓美 IT 사령탑 비교해보니
그런데 국내에선 이런 기업을 만들 정책을 이끄는 사람 대부분이 통신 전문가다. 실리콘밸리와 이스라엘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벤처기업가, 인터넷·소프트웨어 전문가 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 통신 전문가가 장악한 한국의 창조경제
이는 초고속인터넷과 이동통신망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보급하면서 ‘IT 강국’이란 명성을 쌓았던 한국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하지만 통신은 기본적으로 수도, 전기, 도로 같은 인프라 건설업이다. 진정한 IT 산업의 경쟁력은 좋은 인프라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위에서 생산되는 뛰어난 제품에서 나온다. 이것이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기업으로 대표되는 인터넷과 소프트웨어 분야다.
○ 벨 헤드 대(對) 넷 헤드
한국보다 IT 산업의 역사가 긴 미국에서는 이런 인프라를 담당했던 통신 전문가들이 IT 산업 전반에 나섰던 시기를 거쳐 1990년대 후반 이른바 ‘닷컴 버블’ 이후 인터넷·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이 전면에 등장했다.
미국 IT 업계는 이를 가리켜 ‘벨 헤드(bell head) 대 넷 헤드(net head)의 대결’이라고 부른다. 벨은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에서 나온 말로 통신 전문가를 뜻한다. 넷 헤드는 1990년대부터 급성장한 인터넷·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이다. 구글을 창업한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벨 헤드는 넷 헤드들이 통신사의 인프라를 이용해 무료 통화 등을 제공하면서 ‘무임승차’한다고 비난해왔다.
최근 미국에서는 넷 헤드들의 목소리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직속 기구로 설치한 과학기술자문위원회(PCAST)의 구성을 보면 전체 위원 19명 가운데 IT 관련 인사가 4명이다. 이 중 부위원장인 윌리엄 프레스 오스틴 텍사스주립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를 뺀 3명이 전·현직 기업인이다. 에릭 슈밋(구글 회장), 크레이그 먼디(마이크로소프트 전 최고연구전략책임자), 마크 고렌버그(선마이크로시스템스 출신 벤처투자자)가 그들이다. 벨 헤드로 분류할 수 있는 인사는 한 명도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성장이 정체된 AT&T나 버라이즌 같은 통신사보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인터넷·소프트웨어 기업이 미국 경제에 훨씬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 통신과 인터넷은 IT 발전의 양 날개
벨 헤드와 넷 헤드는 IT 산업의 발전을 이끄는 두 날개다. 하나라도 없으면 날 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에선 이 균형이 벨 헤드 쪽으로 지나치게 쏠렸다. 마이크로소프트 출신 IT 평론가 김국현 에디토이 대표는 “행정부는 물론이고 국회에서도 최근 재·보궐선거에서 당선한 안철수 의원을 제외하면 어디에서도 넷 헤드라 불릴 만한 사람이 없다”며 “정부가 소프트웨어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등용하는 정책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넷 헤드 기업인들도 적극적으로 정치인이나 다른 산업군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들은 올해 인터넷산업리더스포럼(가칭)을 만들어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다양한 산업계 최고경영자(CEO)와 교류하며 상호 이해를 늘려 나갈 계획이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