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와인 명가 서울서 자선행사 “어린이 환자에 희망 전합니다”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의 와인 명가 ‘피오 체사레’의 오너인 피오 보파 대표(오른쪽)와 김재찬 서울대 어린이병원 소아성형외과 교수는 11년 된 친구다. 두 사람은 “혼자보다 함께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더 기쁜 일”이라며 웃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레스토랑. 와인 파티 겸 경매 행사에 참석한 20여 명이 저마다 손을 들고 금액을 외치고 있었다. 70만 원부터 시작해 130만 원에 팔린 와인은 ‘약과’였다. 100만 원부터 시작한 한정판 와인은 ‘초 단위’로 금액이 올라가 결국 370만 원에 낙찰됐다. 와인 한 병에 몇백만 원이라. ‘부자’들의 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이 행사의 정체는 무엇일까.
행사장 중심에 선 파란 눈의 노신사가 ‘어린이 환자 돕기 자선 행사’라고 말했다. 그는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 와인 ‘피오 체사레’의 오너인 피오 보파 대표(59)였다.
그는 “여덟 병의 값을 다 합치면 2만 달러(약 2200만 원)쯤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덟 병의 와인으로 그는 어린이 환자의 뇌 속에 산소가 얼마나 있는지 알아보는 ‘뇌 산소 포화도 측정기’ 구입비를 마련하는 것이 목적이다. 수익금 전액을 서울대 어린이병원에 기증할 계획을 밝혔다.
이탈리아 와인 회사 오너와 서울대 어린이병원의 연결고리는 보파 대표의 11년 지기인 김재찬 서울대 어린이병원 소아성형외과 교수다. 2002년 우리나라에서 열린 한 와인 행사에 참석한 보파 대표는 우연히 피오 체사레 와인을 마시던 김 교수를 만났다. 행사 전 만난 보파 대표는 그때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가 만든 1954년산 와인이었죠. 시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제품이었고요. 그걸 마시더라고요. 한국에 우리 와인을 마시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는 김 교수에게 이탈리아에 있는 자신의 집과 와인 공장으로 초대했다. 와인에 관심이 많았던 김 교수도 흔쾌히 받아 들였다. 와인으로 만난 두 사람은 이후 보파 대표가 일본 도쿄에 출장을 오면 김 교수가 비행기를 타고 도쿄에 건너갈 정도로 친해졌다.
“이탈리아나 미국 등에서도 와인 자선 행사를 열어 왔지만 한국의 오랜 친구와 함께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만큼 가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와인으로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금전적인 도움이 아니라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행사로 만들면 더 많은 사람이 뿌듯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인터뷰 도중 그는 한국과 이탈리아의 공통점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이탈리아 음식이 채소, 양념을 많이 넣는데 한국도 그렇다”며 “이런 음식에 와인을 곁들여 먹는 문화도 양국이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경매 행사로 얻어진 수익금은 2180만 원. 그는 앞으로도 김 교수와 함께 계속해서 와인 자선 행사를 벌일 계획이다.
“와인을 많이 파는 게 목표가 아닙니다. 와인 애호가들로부터 ‘올바른 와인 회사’로 평가 받는 것, 그것이 132년 동안 피오 체사레가 지켜온 자존심입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