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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전문가가 본 일본 우경화] 대표 우익단체 잇스이카이 창설 스즈키 구니오 최고 고문

입력 | 2013-05-02 03:00:00

“日 건전한 좌익이념 되살려 과거사 균형 잡아야”




4월 30일 도쿄 시내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일본 우익의 대부 격인 스즈키 구니오 잇스이카이 최고고문이 일본의 우경화 현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매국노라는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 성인에게 “우익단체를 말해보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잇스이카이(一水會)를 첫 번째로 꼽는다. 1972년 설립 당시 주류인 좌익 사상에서 벗어나 우익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했다. 이 단체는 매월 첫 번째 수요일 강사를 초빙해 강의를 듣는 학습 모임으로 출발했다.

우익 대부분이 반공노선에 친미를 표방하지만 잇스이카이는 ‘대미 자주’ ‘전후체제 타파’를 기치로 내걸었다. 신(新)우익인 것이다. 잇스이카이 멤버들은 초창기에는 정부 건물에 난입하거나 폭력을 휘둘러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정치적 과격 행동과 거리를 뒀다.

잇스이카이를 만들어 초대 회장에 취임했고 1999년부터는 최고고문으로 지내는 스즈키 구니오(鈴木邦男) 씨를 지난달 30일 만났다. 우익이 바라보는 현재 일본의 모습이 궁금했다.

스즈키 고문은 “일본의 정치권과 사회가 너무나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어 생태계가 파괴될 지경”이라며 “매국노라고 비판을 받더라도 ‘한국과 대화하자’고 말하는 용감한 정치인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은 우익이지만 “건전한 좌익의 이념을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 일본 정치권을 평가하면….

“퍼포먼스 정치가만 가득 들어차 있다. 그들은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하면서 ‘우리는 멋진 정치가다’고 생각한다. 한국, 중국과 신사 참배 문제를 논의하는 게 아니라 일본 국민들에게 자신의 참배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들은 ‘한국, 중국에 굴복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외교가 완전히 사라졌다.”

―일반인들도 점차 과격해지는 것 같다.

“일본 국민 한 명 한 명은 모두 고독하고 약한 존재다. 하지만 그들 모두 ‘일본이 강해지면 우리도 윤택해진다’고 믿고 있다. 또 인터넷 공간에서 어느새 ‘강한 일본인’이 돼 버린다.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를 수호하고 군대를 보유하라고 주장한다. 한국, 중국과 전쟁을 하라는 사람들도 많다. 신오쿠보(新大久保) 등지에서 ‘한국인을 죽여라’고 주장하는 단체도 있다. 그들은 그게 애국이라고 믿고 있다. 과거 같으면 경찰이 잡았다. 하지만 요즘은 경찰이 그들의 주장을 그냥 듣고만 있다. 문제다.”

―일본 전체가 우경화되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고 본다. 40여 년 전 내가 대학생일 때는 좌익이 훨씬 많았다. 그들은 평화헌법 개정을 반대했고 일본의 과거사를 반성했다. 그들은 공공연히 ‘나는 애국심 따위는 없다. 애국심을 강조하면 배외(排外)주의로 흐르고 전쟁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높은 이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일본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근본 이유가 뭔가.

“소련이 무너지면서 좌익들이 힘을 잃기 시작했고 반면 내셔널리즘이 생겨났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인들은 한국과 북한에 대해 ‘가해자로서 미안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 시절 북한이 일본인 납치를 인정했을 때부터 분위기가 바뀌었다. 일본은 피해자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북한을 용서할 수 없다는 의견이 분출하면서 점차 사회가 우경화됐다. ‘지금까지 일본은 너무 약했다. 제대로 된 헌법이 없어 그랬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됐다.”

―정치권과 국민이 서로 ‘우경화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 같다.

“동감이다. 과거 한일 간 문제가 생기면 의원 채널을 동원해 대화로 해결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화가 사라졌다. 대화를 하자고 주장하면 선거에서 떨어진다. ‘한국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외치는 게 선거에 유리하다. 국민과 정치가 모두 오른쪽으로 가 있다.”

―우익의 대표가 우경화 현상을 비판하니 이상하다.

“(하하 웃으며) 사회가 너무 좌익에 경도돼 있다는 생각에 나는 우익단체 잇스이카이를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태계의 축이 크게 오른쪽으로 가 있다. 우익은 소수일 때 존재가치가 있다. 지금처럼 전반적으로 우경화된 상황은 위험하다. 그러다보니 나는 좌익 같은 우익이 돼 버렸다.”

―다른 우익으로부터 공격당하지 않나.

“여러 번 구타를 당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 누군가 방화를 한 적도 있다. 휴대전화가 없기 때문에 전화 테러는 다행히 당하지 않았다. 하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어떻게 평가하나.

“신념이 있는 정치인이다. 한 번 실패했기 때문에 반성을 했고 새롭게 각오를 다졌다. 덕분에 지난해 12월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했다. 하지만 우리는 좌익과 엄청 싸우면서 좌익을 이해했지만 그는 치열하게 싸워본 적이 없다. 현재 우익 목소리를 국민의 뜻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헌법 개정, 과거의 각종 담화를 고친다고 말했다. 한국과 중국이 반발해도 ‘강한 일본’을 외치며 밀어붙이고 있다. 잘못됐다. 그리고 위험하다.”

―우익은 모두 헌법 개정에 찬성하지 않나.

“‘핵무기 보유 불가’ 등과 같은 분명한 원칙을 먼저 정해야 한다. 그 후 헌법을 어떻게 고칠지 의논해야 한다. 지금은 그런 원칙이 없다. ‘한국에 군대가 있으니 우리도 가져야 한다’ ‘북한이 핵을 갖고 위협하니 일본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 이런 수준이다.”

―향후 일본의 모습을 어떻게 보나.

“자민당이 헌법 개정을 시도할 텐데 실제로 개정되면 위험하다. 한국, 중국에서도 요즘 내셔널리즘이 만연하기 때문에 일본 정치인들의 행동을 계속 공격할 것 같다. 그렇게 해선 안 된다. 그럼 오히려 아베 정권을 도와주는 것이다. 아베 씨가 총리가 될 때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해 오히려 그를 도와준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당시 북한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의 입지가 매우 좁아졌다.”

―일본의 우경화를 막을 방법은….

“매국노라고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한국과 대화하자’고 말하는 용감한 정치인이 나와야 한다. 한때 ‘다케시마 문제로 한일 관계가 나빠질 것 같으면 다이너마이트로 섬을 폭파시키는 게 낫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도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일본의 강경 매파 목소리, 잘못된 점만 지나치게 부각시켜 보도하는 것은 양국 국민의 감정의 골만 더 깊어지게 만든다. 동아일보는 한일 학자나 지식인들이 서로 이야기하고 이해하는 장을 만들어주는 신문이 돼 주길 바란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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