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규제 - 이민개혁 - 시퀘스터 좌초… 시리아 - 북핵 등 대외정책도 혼선기자회견서 “힘들다, 어렵다” 연발, 지지율 50%… 재선이후 최악
지난달 30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기자회견장. 버락 오바마 대통령(사진) 2기 행정부 취임 100일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 “‘주스(정책적 동력)’가 벌써 다 떨어진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지자 오바마 대통령이 발끈했다. 이날 47분간의 회견에서 “힘들다” “어렵다”는 단어를 10회 가까이 반복할 정도로 오바마 대통령은 지친 모습이었다. 불과 사흘 전 백악관 기자단 만찬에서 기자들의 배꼽을 쥐게 했던 자신감은 보이지 않았다. 정책 실패에 대해서는 “내 잘못은 아니다”며 뒤로 빠지는 ‘방관자 대통령’의 모습을 보였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비판했다.
미국 역사상 재선에 성공한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화려하게 출범한 오바마 2기 100일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1월 20일 취임 연설에서 재정문제 해결을 통한 경제회복 이민개혁 총기규제 등 진보적인 어젠다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외적으로는 테러 척결, 시리아·이란 사태 해결, 중동평화 진전 등을 내세웠다.
이민개혁의 앞날도 밝지 않다. 초당적 상원의원 8인 그룹이 추진하는 이민개혁안은 이미 완성됐지만 보스턴 마라톤 테러 후 이민자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공식 발표를 미루고 있다. 8인 그룹에 속한 마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조차 지난달 30일 “법안이 하원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인정할 정도다.
경제 문제도 쉽게 풀리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글로벌 경제에 큰 타격을 주는 ‘시퀘스터(연방정부 예산 자동감축)’를 막겠다고 공언했지만 실패했다. 이에 따라 올해 미국 예산의 2% 수준인 850억 달러가 사회 각 분야에서 깎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최대 치적으로 꼽히는 건강보험 개혁은 텍사스 등 공화당이 장악한 주 정부들이 시행을 거부하면서 난관에 부닥쳤다. 이 법안을 주도했던 민주당의 맥스 보커스 상원 재무위원장조차 “건보개혁은 대형 충돌사고를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외정책에서 발등의 불인 시리아 사태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전쟁의 재연이 될 것을 우려해 개입을 주저하고 있다. 30일 기자회견에서도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사용을 방관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더 구체적인 증거가 필요하다”며 뒤로 물러섰다. 군사 개입을 주장해온 존 매케인 등 공화당 의원들은 “대통령이 주저하는 사이 시리아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학살되고 있다”고 몰아붙였다.
국내 개혁정책이 지지부진하고 대외정책 불신이 가중되면서 최근 AP-GfK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50%로 지난해 11월 재선 성공 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WP는 “오바마 2기 정책이 갈팡질팡하지만 하나 일관된 것이 있다면 대통령이 정책 실패를 의회 탓으로 돌리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