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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셰임’… 섹스중독 뉴요커가 진짜 빠진건 ‘불통의 늪’

입력 | 2013-05-02 03:00:00


영화 ‘셰임’은 포르노와 섹스중독에 빠진 한 남자 설리번(왼쪽)의 얘기를 그린다. 영화는 과도한 성적 욕망, 그로 인한 수치심을 다루면서 의사소통이 부족한 현대인의 문제를 꼬집고 있다. 백두대간 제공

‘셰임(shame).’ 수치심. 뉴욕 맨해튼의 번듯한 직장인 설리번(마이클 패스벤더)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말이다. 설리번은 직장에서는 매너남이고, 잘생긴 외모로 술집에서는 뭇 여성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남부러울 것 없는 그가 수치심을 느껴야 할 이유는 뭘까? 그의 컴퓨터를 수리한 사람들에게 들었다며 직장 상사가 던진 한마디. “컴퓨터가 온통 지저분한 동영상의 흔적들로 가득하다는데….” 설리번의 취미는 포르노 감상과 콜걸들과의 뜨거운 밤 보내기. 그러던 어느 날 가수인 여동생 씨씨(캐리 멀리건)가 그의 집을 찾아온다. 청소년기에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 씨씨는 오빠와 간절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지만 설리번은 관심이 없다.

9일 개봉하는 영화 ‘셰임’은 포르노와 섹스중독에 빠진 한 남자의 이야기다. 영화는 얼핏 보면 성적 욕망에 과도하게 빠져든 남자가 느껴야 할 수치심에 관한 것 같다. 하지만 전하는 메시지는 현대인의 의사소통 부재이다.

설리번의 의외의 모습은 연애에는 서툴다는 점. 직장동료 여성 마리안(니콜 비헤리)과 연애를 시작하지만 정작 잠자리를 갖지 못한다. 그의 문제는 남과 이야기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동영상과 콜걸들은 쌍방향 대화가 필요 없다. 그가 원하는 것을 그저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존재들이다. 육체에 갇힌 설리번은 스스로를 소외시켜버린다.

카메라는 설리번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 앵글을 맞춘다. 주인공의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연출 솜씨가 압권이다. 스타일리시한 화면들이 뉴요커의 고독과 욕망, 그리고 심리적 장애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파격적인 정사신과 노출 등 거북한 장면들이 이어지지만 눈을 뗄 수 없는 매력이 있는 영화다.

장시간의 성기 노출 등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인 패스벤더에게 2011년 베니스영화제는 남우주연상을 안겼다. 영화에서 그는 마치 감정이 증발해버린 사람처럼 보인다. 이 연기를 보고 리들리 스콧 감독이 ‘프로메테우스’의 인조인간으로 그를 캐스팅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08년 ‘헝거’로 칸영화제에서 신인감독에게 주어지는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스티브 매퀸 감독의 두 번째 영화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이 영화에 ‘제한상영가’가 아닌 ‘18세 이상’ 등급을 부여한 점은 고무적인 일이다. ‘아이언맨3’가 전국 2000여 개 스크린 중 1300개 이상을 장악한 요즘, 여운이 오래 남는 강렬한 영화를 찾는 관객들에게 강추! 18세 이상.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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