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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국의 무예 이야기]조선시대 무예의 요체 4가지

입력 | 2013-05-03 03:00:00

담력 기르고 힘 키운 뒤, 정교하게 다듬고 속도로 완성




1592년 4월 15일 부산 동래성에서 벌어진 전투를 그린 ‘동래부순절도(東萊府殉節圖·보물 392호)’. 투항 권유를 받은 동래부사 송상현은 왜군 2만 명 앞에 “죽기는 쉽고 길을 열기는 어렵다”는 내용의 푯말을 내던졌다. 그와 함께 백마를 타고 도망가는 경상좌병사 이각(그림 상단)의 대조적인 모습도 보인다. 육군박물관 제공

누구라도 ‘무예(武藝)’란 말을 들으면 강한 주먹이나 날렵한 몸놀림부터 먼저 떠올린다. 그래서인지 무예를 익힌 사람 주위에는 허무맹랑한 무용담이 떠돌기 마련이고,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존경심을 잃지 않는다. 중국 무협영화에 등장하는 신비한 무공비급이나 특정 무술은 상상하는 것만으로 신명이 난다. 하지만 전장에서의 무예란 개인의 생명, 나아가 국가의 운명과 직결되는 존재다. 조선시대 군사들은 늘 무예의 핵심에 대해 고민했고, 그것을 실전에서 재현하기 위해 끊임없는 훈련을 반복했다.

임진년의 뼈아픈 기억

1592년 4월에 일어난 일본과의 전쟁은 조선이란 국가의 시스템을 순식간에 마비시킬 정도로 커다란 재앙이었다.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을 겪으며 가장 많은 혼란과 변화를 겪은 곳은 다름 아닌 군대였다. 이후 조선군은 그동안 유지 발전시켜 온 무예를 대대적으로 개조해야 했다.

전쟁을 시작한 지 20일도 못 되어 수도 한성이 적의 수중에 들어갔다는 것은 군인 입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치욕이었다. 게다가 조선은 국왕이 수도를 버리고 개성과 평양을 거쳐 국경선 근처 의주로 피란해야 하는 한계 상황까지 내몰렸다. 물론 이후 북쪽에서 명나라 구원군이 도착했고 남해바다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내륙에서는 관군과 의병이 활약해 전세를 만회할 수는 있었다.

이렇게 불리한 전황을 극복하기 위해 군대 시스템을 재편하고 군사무예의 변화를 꾀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당시에는 ‘변화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감’이 압도적으로 작용했다. 승부와 직결되는 군사들의 무예 훈련은 조선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이런 위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국왕이 직접 무예서 편찬을 지시하게 됐다. 즉각 당대 최고의 병법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무예의 요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훈련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당시 조선의 최고 이론가들이 정리한 군사무예의 핵심은 일담(一膽), 이력(二力), 삼정(三精), 사쾌(四快)로 정리할 수 있다. 그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면 조선시대 군사무예의 존재 의미를 간결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먼저 담, 즉 용기다(一膽). 우리는 “간담이 서늘하다”는 말을 흔히 한다. 간장과 쓸개는 용기를 나타낸다. 담력은 예로부터 무예의 요체 가운데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특히 실제 전투상황과 직결된다. 창칼이 번득이고 화살과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는 담력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담력이 부족한 병사는 실전에서 주변의 전우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아군에 득보다는 실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전 군대에서는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담(膽)을 가장 먼저 훈련시켰다. 요즘 군대의 이른바 ‘악으로, 깡으로’ 식의 군사훈련도 그 근원이 같다.

사기(士氣)는 전투에서 승리를 가져다주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각 군사의 용기를 군대라는 집단으로 모아낸 개념이다. 군사의 기상이 하늘을 찌르는 것이야말로 군대의 미덕이다. 예전 군대의 가장 기초적인 훈련이 담력을 기르는 것이었던 이유다.

두 번째는 힘이다(二力). 담력을 어느 정도 갖게 된 사람은 반드시 ‘힘(力)’을 기르는 훈련으로 나아가야 한다. 조선시대의 전투는 맨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병장기를 들고 하는 것이었다. 무거운 병장기를 자유롭게 다루기 위해서는 당연히 힘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조선시대 군사들은 때론 일부러 무거운 갑옷을 입은 채로 훈련하거나 실전에서 쓰는 무기보다 무거운 장비를 사용해 근력을 단련했다. 또 전투가 벌어지면 자신의 무기가 망가지거나 분실되는 경우가 많아 타 병종의 다양한 무기를 다루는 일도 훈련에 포함되곤 했다.

무예의 요체… 담력, 힘, 정교함, 빠름

세 번째는 정교함이다(三精). 용기를 갖추고 힘을 기른 후에는 이를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이 필요하다.

군사들의 사기가 충천하고 그 힘이 태산을 무너뜨릴 정도로 거세다면 일단 절반의 승리는 보장된 셈이다. 그러나 각 군사들의 무예실력이나 진법훈련이 정교하지 못하고 투박하다면 어느새 상대방의 공세에 틈을 보이고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 고대 로마시대의 시민군은 정교한 전법과 진법으로 전략적 능력이 떨어지는 게르만족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마지막 미덕은 바로 신속함이다(四快). 실전에서는 빠르고 통쾌한 한 방을 준비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나아가 적의 창칼보다 빠르게 움직여야만 전투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할 수 있고, 적보다 총알이나 화살을 더 빠르게 쏴야만 기선을 제압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용기, 힘, 정교함이 모두 부족한데 빠르기만 해서도 곤란하다. 이런 자는 전투에서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옛 사람들은 무예의 본질적 의미를 파악하고 그 중요도를 지키는 것이 효과적인 무예훈련이라고 보았다.

현대인들은 흔히 ‘사는 것이 전쟁’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그만큼 혹독한 경쟁 속에서 하루를 보내기 때문인지 요즘 여기저기서 ‘힐링(치유)’이라는 말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온다. 삶이라는 전투에서 심신의 상처를 입었으니 넉넉히 보듬어 달라는 소리 없는 아우성인 셈이다.

전쟁과도 같은 개개인의 삶을 근본적으로 힐링하기 위해 조선시대 무예의 요체인 담-력-정-쾌(膽-力-精-快)를 적용해 봐도 좋을 것이다. 자신이 부닥친 일에 대해 용기와 힘을 갖고 대응하며, 그것을 정교하고 빠르게 처리한다면 우리 모두가 인생의 승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최형국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역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