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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60세 시대]어떤 변화 오나

입력 | 2013-05-03 03:00:00

정년 의무화해도 정리해고-명퇴는 가능




‘정년 연장의 꿈은 현실화될 것인가.’

1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정년 60세를 ‘권고조항’에서 ‘의무조항’으로 바꿨다. 종전 ‘정년이 60세 이상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것을 ‘사업주는 근로자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여야 한다’고 강제한 것이다. 법이 사인 간 근로계약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개정안의 틀 내에서 법이 시행되는 2016년(근로자 300명 이상 기준, 300명 미만 사업장은 2017년) 이전까지 정년과 임금체계를 손봐야 한다.

정년 보장의 효과는 기업별 업종별로 다르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조직문화나 인사관리 시스템이 60세 정년 시대에 맞춰질 때까지 적잖은 시행착오도 예상된다.

○ 모두가 정년 보장 혜택을 보는 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법 개정으로 60세까지 무조건 회사를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정리해고는 지금처럼 경영상 필요, 노조 협의 같은 요건만 충족하면 가능하다. 다만 부당해고를 당했을 때는 지금처럼 중앙노동위원회나 재판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사업주와 근로자의 합의로 실시되는 명예퇴직도 정년 보장과 무관하다. 정년 개념이 없는 기간제·파견근로자도 연장 적용 대상이 아니다. 물론 공기업 근로자는 정년 연장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등 일부 대기업은 최근 1, 2년 사이 정년을 60세까지 연장했다. 숙련된 생산직 근로자들을 퇴사시키면 생산성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경쟁사에 취업할 경우 기술 유출까지 우려되는 상황을 감안한 조치였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지난해에만 800여 명이 정년 연장의 혜택을 봤다. 임금이 20%가량 깎였지만 근로자들의 만족도는 높아졌다. 현대중공업 울산본사 조선사업본부의 정영도 기장(59)은 “수십 년간 흘린 땀과 쌓은 기술을 회사가 인정해주는 것 같아 뿌듯했다”며 “노후 준비를 체계적으로 할 여유를 얻은 것도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정년 연장’이 ‘정년 보장’으로 직결되는 것은 생산직 비중이 높은 일부 제조기업, 그것도 사정이 좋은 곳에 국한되는 얘기다. 사무직은 정년 60세가 반드시 보장될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정년을 연장하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금융권의 경우는 60세까지 회사를 다니는 직원이 기대만큼 많지 않았다. 2005년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우리은행의 경우 정년 연장의 혜택을 본 직원은 40%뿐이었다. 나머지는 회사를 옮기거나 퇴직했다. 52세 때 국민은행에서 명예퇴직한 고준현 씨(55)는 “임금피크제가 있어도 대부분 52, 53세면 후배나 경영진 눈치를 보다 명예퇴직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 시중은행 인사팀 관계자는 “제조업에선 고령자의 노하우가 유용하겠지만 서열이 중시되는 사무직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윈-윈 위해선 기업문화, 임금체계 혁신해야

2003년 국내 최초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신용보증기금은 55세 일반직을 별정직(업무지원직)으로 전환하며 58세까지 일하도록 정년을 연장했다. 별정직으로 전환된 사람들은 기존 임금의 55%가량만 받고 채권추심이나 소송수행 등의 업무를 하거나 콜센터 상담원이 됐다. 고용을 연장하긴 했지만 임금이 많이 줄어들고 ‘험한 일’ ‘허드렛일’을 맡으면서 불만도 커졌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연수원 교수, 컨설팅 업무 등 이들을 위한 직무를 개발한 뒤에야 제도가 안착됐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상자들에게 적합한 직무를 만들지 않은 채 정년만 연장되면 기업과 근로자 모두 손해”라며 “50대 중반에 맞춰진 인력관리시스템을 60세로 높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국내 기업들이 50대 이상 관리자의 역량을 높이는 교육시스템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근로자 직무교육을 하는 한국생산성본부, 한국능률협회 등에도 50대 이상 직장인을 위한 위탁교육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 노무 컨설팅업체인 케이엔컨설팅의 김진술 대표는 “고령자의 업무역량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할 경우 정년 연장 혜택을 본 근로자의 직무만족도는 높아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2000년대 중반 국내 한 대형 통신사 직원들은 충격에 빠졌다. 일부 부장급 관리자를 콜센터 고객상담요원으로 발령한 것이다. 사실상 퇴출이었다. 회사 창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고참 부장 몇 명 나가는 것으로 상황은 쉽게 정리됐다. 이 회사의 한 직원은 “능력과는 무관하게 고참순으로 사람을 솎아내는 게 한국 직장의 분위기”라며 “정년이 연장된다고 해서 이런 분위기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나이 많은 상급자와 나이 어린 하급자 간의 상명하복을 기본 틀로 하는 직장 문화를 업무와 능력 중심의 질서로 재편해야 정년 연장에 따른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고참 직원이 어린 직원 밑에서 자연스럽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탄력적으로 고참 직원을 배치해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무 연수가 높을수록 임금을 많이 받는 연공급제 체계도 혁신 대상으로 꼽힌다. 외국처럼 직무와 성과에 따라 임금을 정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현재와 같은 임금구조에서는 고령 근로자가 정년을 보장받기보다는 간접적인 퇴출 압력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일본 등의 사례를 봐도 정년 연장의 성패가 임금체계 개편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일정 연령 이상의 고령자에게는 정년을 연장하는 데 비례해 임금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재계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는 임금 손실 없는 정년 의무화를 고집하고 있다. 노사가 이 문제를 놓고 충돌할 경우 정년 연장의 후폭풍은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2016년 법 시행 전까지 원만한 노사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상당한 혼란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전 한국노동연구원장)은 “임금체계를 개편하지 않고 정년만 연장할 경우 기업 경쟁력에 타격이 올 수밖에 없다”며 “이미 법이 통과된 만큼 일본처럼 노사가 상생의 지혜를 모아 법 시행 전까지 임금체계를 개편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창덕·이성호·신수정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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