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원 정치부장
중진의원만이 아니다. 앞으로 2년간 당을 이끌 대표를 뽑는 민주당의 5·4전당대회는 같은 당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정 떼는’ 소리가 도를 넘고 있다. 범주류 쪽 후보는 경쟁 후보의 과거를 거론하며 ‘당선되면 안철수 의원과 함께 새로운 세력을 도모할 분열적 리더십’이라는 식으로 공격한다. 비주류 후보 쪽에서는 “이야말로 당을 분열시키려는 친노 측의 패권주의적 네거티브”라며 발끈하고 있다. 대량 문자메시지 발송을 둘러싼 불법선거운동 공방에 전직 대표 배후설까지, 총선 대선에 이어 재·보선까지 참패한 정당의 새 출발 무대가 맞나 싶다.
당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달 26일 서울 영등포 민주당사 2층 회의실엔 평소 북적대던 기자들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기자들 대다수가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국회에 처음 출근하는 현장을 취재하러 썰물처럼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127석을 가진 제1야당이 무소속 2명(안철수+송호창)보다도 존재감을 못 보여주고 있는 ‘굴욕’은 언제 만들어질지 알 수도 없는 ‘안철수 신당’ 지지율의 반 토막, 심지어 3분의 1토막에 불과한 당지지율에서도 나타난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2일 퇴임기자회견에서 “안철수 의원이 당을 만들어 민주당을 뿌리째 가져가면 공멸하는 것”이라고 한 말이 절규처럼 들린다.
민주당의 근본적인 위기 원인은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 복잡한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1955년 창당 이후 이어져온 정체성을 잃어버린 데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유석(維石) 조병옥 박사와 정일형 전 외무부 장관 등 민주당의 창당 주역들은 광복 후 대한민국을 독립국가로 승인받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총회에 한국 대표단으로 참석했었다. 그런 당의 후예들이 올해 들어 국회에서 보여준 첫 번째 활동은 대한민국 영해를 일본 중국의 침탈로부터, 북한의 도발로부터 지키기 위한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발목을 잡으며 새해 예산안 처리를 새해 벽두까지 지연시킨 것이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또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들의 천막농성장을 격려 방문하려다가 한진중 노조로부터 “정치권이 개입하면 사태 해결은 못하고 선박 수주에만 차질을 줄 것”이라는 항의서한을 받기도 했다.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정당이 합리적인 정책대안 마련보다는 ‘민노당식 투쟁 따라하기’가 습관화되다 보니 되레 서민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모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당내에서도 제기됐다.
새로 뽑히는 민주당 지도부는 대한민국으로부터, 중산층과 서민으로부터 너무 멀리와 버린 듯싶다는 ‘40년 당원’ ‘50년 당원’들의 걱정을 덜어주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인간의 얼굴을 한 민주당’을 재건하는 데서 새 출발의 실마리를 찾아줬으면 좋겠다. 정부 여당이 혹여 잘못된 길을 갈 때 대안이 돼야 할 제1야당이 국민의 사랑을 잃고 지리멸렬 상태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헌정사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성원 정치부장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