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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칼럼/윤상호]‘진짜 사나이’를 위한 배려

입력 | 2013-05-03 03:00:00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요즘 TV에선 ‘밀리터리(군대) 예능’이 대세로 떠올랐다.

지난해부터 한 케이블 채널의 병영 생활을 다룬 시트콤이 인기를 끌더니 최근엔 공중파 채널의 주말 황금시간대에 연예인들의 병영 체험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두 프로그램 모두 장안의 화제가 되면서 반응도 뜨겁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에서 두 프로그램은 많게는 수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군대 얘기는 재미없고 식상하다’는 속설을 철저히 깨뜨리는 반전이다. 일각에선 TV 예능의 새 바람을 일으켰다는 찬사까지 쏟아지고 있다.

이유가 뭘까. 군대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친숙한 소재다.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은 군대 예능을 보면서 ‘그때 그 시절’을 진하게 회상한다. 그 밑바닥엔 2년 가까이 가족과 떨어져 상명하복과 군기를 생명처럼 여기는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켜야 하는 ‘진짜 사나이’들의 고충과 애환이 깔려 있다. 군대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훈련병과 이등병 계급장을 단 연예인들의 힘든 훈련과 잇단 실수 장면을 보면서 ‘그래 그랬었지’ 하며 무릎을 치는 예비역이 필자뿐만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 ‘뽀글이’(봉지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라면), ‘군대리아’(군대에서 배급받는 햄버거) 등 병영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別味)’는 군 생활의 추억을 배가하는 요소다. ‘눈물 젖은 빵’처럼 추억과 애환이 담긴 음식은 평생 잊지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 실제로 요즘 인터넷 블로그엔 군대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뽀글이’와 ‘군대리아’를 만들어 먹어 봤다는 시식기가 심심찮게 올라온다.

군대 예능은 군 입대를 앞둔 젊은이와 그 가족들의 병영에 대한 호기심을 해결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아울러 유명 연예인들이 직접 병영 생활의 이모저모를 체험함으로써 군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는 효과도 기대된다.

하지만 리얼을 표방하든 코믹적 요소를 가미하든 군 생활이 재미 위주의 예능 소재로만 다뤄져선 안 된다고 본다. 필자가 군에 입대했던 2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병역 의무는 결코 녹록지 않은 현실이다. 사회에서 자유를 만끽하다 나라의 부름을 받고 엄격한 군율(軍律)로 꽉 짜인 병영 생활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병영 환경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한국 남성들이 군 입대로 겪는 ‘문화적 충격’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군대는 대한민국 남자로서 꼭 가야 하지만 두 번 간다면 글쎄…’라는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그만큼 병역 의무는 인생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20대 한국 남성들에게 적잖은 희생과 인내를 요구한다.

더욱이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 위협 속에서 군 복무는 때론 조국에 목숨을 바쳐야 하는 위험하고도 냉엄한 현실 그 자체다.

지난달 말 국회 국방위원회가 제대군인 취업 시 가산점제를 부여하는 내용의 병역법 개정안(군가산점제) 처리를 둘러싸고 논의를 거듭했지만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국방위 소속 의원들은 ‘군가산점이 병역의무를 마친 데 대한 보상 차원이냐, 특혜냐’를 놓고 논쟁을 벌였지만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한다.

군 가산점제는 군필자에 대한 실질적 예우를 통해 건전한 병역 문화를 정착시키고 병역 면탈을 막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여성계는 군 복무 가산점이 남녀평등에 위배된다며 반대를 고수하고 있다. 1999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이 난 군가산점제를 부활해선 안 된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일각에선 군 복무 가산점에 맞서 ‘엄마 가산점제’(출산 여성의 재취업 시 가산점을 부여하는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하지만 군 가산점제는 헌법에 명시된 병역 의무를 다한 사람들에 대한 형평성을 회복하는 것이지 특혜는 아니라고 본다. 병역 의무를 성실히 이행한 젊은이들이 불이익이나 역차별은 받지 않도록 하는 게 순리가 아닐까. 역대 정부는 군복이 자랑스럽고 군 복무가 영광스럽도록 하겠다고 했다. 내 가족 내 나라를 위해 청춘을 바친 많은 영웅이 자부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다. 그렇다면 ‘부모 형제가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룰 수 있도록’ 헌신한 ‘진짜 사나이’를 위한 국가적 예우와 배려는 당연한 일이 아닐까. 군복무 가산점제가 그 출발점이 돼야 할 것이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