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우(1960∼)
이른 아침 눈뜨면
머리맡에 배 한 척 밀려와 출렁이고 있네
찢긴돛폭사이말간햇살들바삭거리며부서져내리고있네
그 배 문가에 기대어 놓고
바람이 부는 쪽으로 한없이 걸어가
하루 종일 이 일 저 일에 시달리다 집에 돌아오면
어디론가 가고 없는 배
종이를 접어 배를 만드네
한 척 두 척 내 손을 떠난 배는
내 방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떠나가고
험한 물살에 시달리다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아버리고
다시 누워서 눈을 감으면
이 밤도 저 멀리서 흔들리며 다가오는 배가 보이네
물살에 실려 그 배는 이리저리 떠돌다
잠에서 깰 무렵이면 어느덧 내 머리맡에 와 있네
배를 얻고 잃기를 되풀이하며
매일 낮 매일 밤 나 세상을 떠돌았네
닿을 길 없는 부두를 찾아 덧없이 헤매 다녔네
어느덧 늙고 지친 내가 눈을 뜨면
어김없이 머리맡에 와 나를 굽어보고 있는 낡은 배 한 척
부서진 뱃전에 머리 기대고
나 다시 떠나야 할 하루의 먼 길을 헤아려보네
“내 얘기네….” 이 시의 설득력 있는 쉬운 은유에 동감할 직장인이 많을 것이다. 이른 아침 일어나서 출근하고, ‘하루 종일 이 일 저 일에 시달리다’ 폭삭 지쳐서 집에 돌아오고, 그렇게 하루하루 살다 보니 어느새 노년! 대다수 현대인의 삶이다. 그중 어떤 이는 간간, 잠들기 직전이나 잠에서 막 깼을 때, 까마득히 잊었던 젊은 날의 꿈이 찰랑거리며 밀려와 가슴이 아리기도 할 테다. 그런 때가 있었지. 훤칠한 돛을 올리고 꿈을 향해 늠름하게 떠날 참인 새 배 같았던 나! 그런데, 여기가 어딘가요, 한 치도 움직이지 못한 채, 이제는 아무 지향도 없이 용골 삭은 배가 되었구나.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