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60세 시대]<2> 사라지는 직급정년제
[정년 60세 시대] 사라지는 직급정년제
현재 방영 중인 TV 드라마 ‘직장의 신’에 등장하는 고정도 과장의 모습이다. 가상의 이야기지만 현실에서도 고 과장 같은 ‘만년 과장’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2016년부터 정년 60세 의무화가 시행되면 나이는 많지만 할 일이 마땅치 않은 ‘고 과장’이 늘어날 수 있다. 위계서열을 중시하는 한국의 기업문화에서 ‘고 과장’들을 적절히 배치해 알맞은 일감을 주는 것이 이슈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 ‘고 과장’ 전성시대 올까
삼성전자의 경우 부장 승진 후 5년차가 되면 임원 승진 대상이 된다. 공식적으로 직급정년제를 운영하지는 않지만 세 차례 연말 인사에서 임원이 못 되면 ‘삼진아웃’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게 관례다. 계속 근무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극히 일부다. 오히려 최근엔 3, 4년차에 임원으로 발탁 승진하면서 부장과 임원 간 선후배 역전 현상도 자주 생긴다.
다른 대기업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한 유통 대기업에서 부장으로 퇴직한 이모 씨(53)는 “차장 달고 7년차쯤 되면 뒤통수가 슬슬 따갑다”며 “‘저 선배 때문에 우리가 승진을 못 한다’는 얘기를 공공연히 하는 후배들도 있다”고 털어놨다. 윗사람들도 곱게 볼 리 없다. “다음에 승진할 거야”라고 위로하다가도 “왜 안 나가냐”며 핀잔을 주기 일쑤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1년 근로자 100명 이상 기업 1000곳을 대상으로 임원 승진에서 탈락한 부장급 간부의 정년퇴직 실태를 조사한 결과 승진 탈락자 전원이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둔 기업이 전체의 40%나 됐다.
이번 법 개정으로 정년이 의무화되면 직급정년제를 공식적으로 둔 기업들은 2016년부터는 이를 폐지해야 한다. 비공식적으로 운영하는 기업들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50, 60대까지 회사에 남아 있으면 도둑’이라는 뜻으로 비아냥대는 표현인 ‘오륙도’까지 등장했지만 앞으로는 60세까지 회사에 남는 걸 당연한 권리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 그래도 더 많은 ‘고 과장’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초기에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더 많은 ‘고 과장’이 일할 수 있는 직무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열이 아닌 일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서양의 기업문화를 과감하게 받아들여 ‘고 과장’이 눈치 보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무엇보다 정년 의무화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고 과장’을 왕따나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 풍부한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 존중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유규창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캐나다의 한 주 정부에서는 고령 인력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바꾸기 위해 ‘고령 인력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담은 가이드북을 제작해 기업에 배포했다”며 “정년을 늘리고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 방식에 추가해 새로운 틀 속에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직(轉職), 재취업에 국한된 근로자 재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유 교수는 “40대 초중반쯤 경력정체(Career Plateau·능력이나 기업의 구조적 문제 탓에 승진이나 자리 이동 기회가 주는 것)가 나타나는데 고령 인력이 다른 성격의 부서에서도 일할 수 있게 기업이 적극적으로 직무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