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성공단 9년만에 사실상 폐쇄
마지막 차량 귀환… 불 꺼진 남북출입사무소 전광판 개성공단에 마지막까지 남았던 남측 인원 7명이 돌아온 3일 오후 ‘이제 개성공단에는 아무도 없다’는 걸 상징하듯 경기 파주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의 전광판이 꺼져 있다. 작은 사진은 7명 중 KT 직원 등이 회사 승합차 위에 짐을 잔뜩 싣고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돌아오는 모습. 도라산=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북한은 한국 인력 전원 철수를 앞두고 돈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며 ‘개성공단은 현금창고’라는 사실을 스스로 재확인시켰다. 북한은 최종 실무협상을 통해 1300만 달러(약 142억 원)를 챙겼지만 ‘믿을 수 없고, 투자할 수 없는 나라’라는 치명적인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각인시켰다. 개성공단이 사실상 문을 닫으면서 남북한 모두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 북한의 미수금 요구만 충족된 협상
1300만 달러의 ‘미수금’은 남북협력기금에서 지급됐고 입주업체들과 정부가 사후 정산할 예정이다. 하지만 북한이 업체별 세부 명세는 제시하지 않은 채 총액으로 ‘미수금’을 받아 가 정산작업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재권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은 “어떻게 기업의 피해는 고려하지 않고 쉽게 결정할 수 있나. 최소한 기업들에 점검목록을 받아 정산 명세를 꼼꼼히 체크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희건 나인제이아이티 대표는 “3월 생산품을 하나도 갖고 오지 못했는데 왜 3월분 임금을 주느냐”며 정부의 정산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북한과 입주업체 중간에 ‘끼인 신세’가 돼 버린 것이다.
개성에 남겨진 완제품과 원·부자재의 운명은 촌각을 다투게 됐다. 완제품 가운데 계절을 타는 의류는 납품시기를 놓쳤고 다른 설비도 관리 없이 방치될 경우 사실상 폐기물이 될 개연성이 높다. 입주업체 A사 관계자는 “몇 주는 버티겠지만 장마철이 다가오고 있어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 단전·단수 문제도 급부상
정부는 “앞으로 요구사항을 관철해 나가겠다”고 밝혔지만 ‘챙길 것을 챙긴’ 북한이 추가 협상에 응할지 알 수가 없다. 한국 정부가 판문점 채널이나 군 통신선을 복원해 향후 협의를 갖자고 제의했으나 북한은 답을 하지 않았다.
○ 개성공단의 향후 운명은?
이날 개성공단이 사실상 폐쇄 상태에 빠지면서 금강산관광지구의 ‘운영 중단→자산 몰수→사업계약 파기’와 같은 운명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3일 “남조선의 동족 대결 광신자들은 공단에 들어오는 남측 기업가와 노동자 속에 모략꾼, 정탐꾼들을 박아 넣어 우리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비열한 책동에 매달려 왔다”고 주장했다.
양운철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이 미수금 정산까지 하는 걸 봐서 일단 폐쇄 절차로 가는 것 같다”며 “불안정한 긴장 상태가 유지되다 남북 간에 돌발적인 충돌이라도 벌어지면 공단이 완전히 폐쇄될 개연성도 있다”고 말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한반도 정세 전체를 관리하는 수단으로 개성공단 문제를 활용하고 있다”며 “전략적 차원에서 개성공단을 살려야겠다는 판단의 변화가 있기 전에는 한국이 어떤 수단으로 정상화 노력을 해도 북한은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