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 도입땐 너도나도 “장밋빛”… 금융위기 닥치자 잿빛으로
독일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지난해 독일의 무역수지 흑자는 1881억 유로(약 273조 원)로 2007년 이후 가장 많았다. 수출이 1조870억 유로(약 1576조 원)로 2011년에 비해 3.4% 증가한 게 컸다. 2012년 말 기준 독일의 실업률은 5.3%다. 라이벌 프랑스(10.6%)의 절반에 불과하다. 독일이 호황을 누리는 중요한 요인은 ‘유로화 도입’이다.
단일 통화 ‘유로’가 독일 경제에는 날개를 달아줬지만 그리스에는 독약이었다. 마틴 펠드스타인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통화 통합으로 실업과 인플레이션이 악화되면서 유로화의 불안정성은 더 확대될 것”라고 말했다.
‘금융과 상품 시장을 통합해 자원 배분이 보다 효율적으로 이뤄지게 한다. 미국에 견줄 만한 단일 경제권을 형성한다. 진정한 유럽 통합에 기여한다.’ 1999년 1월, 유럽 국가들이 유로화를 도입하면서 기대했던 효과들이다. 유럽이 단일 통화를 쓰는 것은 유럽인들의 오랜 숙원이었다. 1998년 유로존(유로화 사용 국가)의 통화 정책을 책임질 유럽중앙은행(ECB)이 출범했고 이듬해 유로화가 탄생했다.
유로화 도입 초기, 기대는 현실이 되는 듯했다. 각기 달랐던 통화를 하나로 합치니 환율 변동 위험이 크게 줄었다. 과거에는 통화주권이 개별 국가에 있었다. 유로화 도입 후 ECB만 통화 정책을 쓰게 됐다. 유로존 국가들은 인위적 환율 개입이나 금리 조절 같은 통화 정책을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각국 통화 간 위험도의 차이가 사라지다 보니 자연스레 금리는 내려갔다. 유로존의 은행들은 싼 금리로 돈을 빌려올 수 있게 됐다. 장밋빛 전망이 현실화하는 듯했다.
○ 파탄위기 내몰린 그리스
그리스는 서유럽 국가에서 돈을 싸게 빌려와 경제를 활성화시켰다. 때마침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최라는 호기도 있었다. 그리스의 1999년부터 2008년까지 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4.2%다. 유로존 최대 경제 규모인 독일의 평균 GDP 성장률(1.6%)보다 높다.
○ 환율 정책 부재의 위험성 알린 유로화
독일은 가치가 높았던 마르크화를 쓰다가 유로화를 쓰게 되면서 화폐 가치가 떨어지는 효과가 발생했다. 제조업체들은 손쉽게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연구위원은 “독일은 유로화 채택 이후 강해진 수출 경쟁력을 바탕으로 경제 개혁을 추구하면서 성장을 이어갔다”고 설명했다.
독일과 그리스의 운명을 바꿔놓은 유로화. 두 나라 모두에서 ‘유로화 폐기’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차이가 명확하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지난달 29일 일부 소수 정당이 유로존 탈퇴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 “독일 경제에 미친 일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그리스는 2011년 집권당의 중진 의원이 “유로존 탈퇴를 논의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과거 유럽 국가들은 경기가 나빠지면 자국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는 식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단일 통화를 쓰면서 정부의 경제 정책 범위는 좁아졌다. 그리스의 비극은 통화 정책을 못 쓰게 된 국가가 쉽게 돈을 빌려 쓰다가 경기 불황에 대응하지 못한 경우다. 금융 전문가들은 “환율이 한 국가의 운명에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사례”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