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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외 인기 왕벚나무… 원산지 제주선 홀대

입력 | 2013-05-06 03:00:00

먹거리 위주 ‘동네 축제’ 수준 그쳐
대규모 벚나무 단지 조성 등 활용해 왕벚나무 세계화 사업 개발 시급




제주지역에 화려하게 핀 왕벚꽃. 제주 한라산이 세계적인 자생지이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4일 오전 제주시 애월읍 지역 작은 화산체인 노로오름(해발 1070m) 정상. 한라산 정상이 한눈에 들어오는 가운데 삼형제오름 군데군데 하얗게 핀 벚나무가 보였다. 오름을 향하는 길목에서도 자생 벚나무를 확인했다. 국내에 서식하는 벚나무 21종 가운데 13종이 제주지역에 자생할 정도로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왕벚나무는 제주가 원산지이다. 일본인들이 널리 좋아하는 것이 왕벚나무로 꽃이 피기 시작할 때 우윳빛이었다가 질 때는 연분홍빛 꽃잎을 화려하게 흩날리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일본인들은 벚꽃을 다양하게 포장하면서 세계 사람들에게 ‘벚꽃은 일본의 꽃이다’라는 것을 각인시키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아직 왕벚나무 자생지를 찾지 못했다. 국내에서는 제주시 봉개동,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등에서 자생지가 확인돼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한라산 해발 400∼900m에서는 새로운 왕벚나무가 확인될 정도로 세계에 자랑할 만한 원산지이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자원가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 푸대접받는 자생 왕벚나무

2011년 4월 미국의 수도 워싱턴 아메리칸대 교정에 조성한 ‘한국정원’의 모티브는 제주 왕벚나무이다. 워싱턴의 한국정원은 한라산에서 자생지가 발견된 지 1세기 만에 세계로 진출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워싱턴 근교 메릴랜드 주 벨츠빌 시에 있는 미 농림부 산하 농업연구소의 유전자원연구실에서는 제주 왕벚나무를 소재로 조직배양 연구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에서 관심을 들이고 있는 왕벚나무이지만 제주에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초 22회째 왕벚꽃축제를 3일 동안 개최했지만 먹거리가 주종을 이룬 ‘동네 축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축제기간에 맞춰 개화시기를 늦추기 위해 얼음덩어리를 나무 밑동에 놓았다가 웃음거리가 된 적도 있다. 왕벚나무 자생지인 제주에서는 차별적인 축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벚나무는 수종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꽃을 피우고 개화시기도 3월 하순에서부터 5월에 이르기까지 길다. 자생 벚나무가 많은 한라산 관음사 야영장 일대에서는 한 달 동안 개화한 벚나무를 볼 수 있다. 이런 장점을 활용한다면 다양한 수종으로 대규모 벚나무 단지를 조성해 축제기간을 늘릴 수 있다.

○ 왕벚나무 생산으로 차별화 필요

국립산림과학원은 최근 자생 왕벚나무 종자 발아기간을 2개월로 단축시키는 기술을 개발했다. 왕벚나무 종자는 최소한 1년 이상 저온상태에서 저장한 후 파종해야 발아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동안 증식에 애를 먹었다. 이번 종자발아를 통한 증식기술이 개발됨에 따라 관상용이나 조경수는 물론이고 왕벚나무 숲을 조성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왕벚나무 종자를 대량으로 발아시키면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왕벚꽃 거리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의 벚나무 유전자원 보존원은 왕벚나무 종자 공급기지로 활용할 수 있다. 이 연구소 김찬수 박사는 “왕벚나무 자생지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충분하지만 아직도 ‘사쿠라(벚꽃을 뜻하는 일본어)’라는 왜색 시비가 있다”며 “갈수록 식물자원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만큼 왕벚나무 세계화 사업을 시급히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왕벚나무는 1908년 프랑스인 에밀 조제프 다케 신부가 한라산 북쪽 해발 600m에서 표본을 채집한 뒤 1912년 독일 베를린대 쾨네 박사를 통해 제주가 자생지임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