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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View]을→갑…이종범 그림자를 지운 남자 ‘종길 神’

입력 | 2013-05-06 07:00:00

수년간 시행착오를 겪은 뒤 이제야 꽃을 피우고 있다. KIA 외야수 신종길은 김주찬의 부상으로 찾아온 기회를 살리며 팀의 새로운 동력으로 기대이상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KIA 타선 핵심…반전의 사나이 신종길

혹자는 ‘깜짝 스타’라고 얘기하지만, 그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랜 시행착오를 거친 ‘준비된 스타’라고 말한다. 전문가들이 시즌 전 ‘우승 후보’로 꼽은 KIA가 예상대로 초반 선두권을 질주하고 있는 가운데, 알토란같은 활약으로 큰 힘을 불어넣고 있는 선수가 있다. 바로 외야수 신종길(30)이다. 올 시범경기 전체 타격 1위(0.333)에도 불구하고 그는 페넌트레이스 개막전 선발 라인업에 들지 못했다. KIA 외야에 워낙 유능한 선수들이 많아서였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기회를 기다렸고, ‘50억원의 사나이’ 김주찬(32)이 갑작스런 부상으로 이탈하자 기대이상의 활약으로 그 공백을 빈틈없이 메워주고 있다. 5일 현재 타율 0.364로 3위에 올라있고, 1홈런 18타점 7도루로 만점 활약을 펼치고 있다. 지난 주중 두산과의 잠실 3연전에는 내리 3번타자로 중용될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세번의 오른쪽손목 수술…4년간 못 뛴 1군 경기
이적 또 이적…고향으로 돌아왔지만 포지션 변경
은퇴 이종범과 포지션 겹쳐 오해와 부담감 발목
김주찬 공백 찬스 잡아…0.364 타율 3위 달려
안타칠까? 도루할까? 팬들을 설레게 하고 싶다


○롯데→한화→KIA, 2번의 이적

LG 이대형과 광주제일고 졸업동기인 신종길은 2002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6번, 전체 46순위로 롯데에 지명돼 입단했다. 프로 2년차였던 2003년 40경기에서 75차례 타석에 들어서며 ‘1군 맛’을 봤다. 그 해 시즌 뒤 프리에이전트(FA) 이상목을 롯데에 빼앗긴 한화가 그를 보상선수로 지명하면서 독수리 유니폼을 입었다. 한화에서 첫 시즌이었던 2004년 9월 21일 대전 두산전에서 신종길은 1982년 오대석(당시 삼성·22세 5개월 10일)이 세웠던 종전 최연소 사이클링히트 기록을 갈아 치웠다. 20세 9개월 21일. 여전히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2004년 사이클링 히트를 기억하는 팬들이 적지 않다.

“당시엔 너무 어려서인지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그 때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게임에 계속해서 나갈 때였다. 기록보다도 그게 더 좋았던 것 같다. 요즘 들어서야 ‘어린 나이에 내가 의미 있는 기록을 세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 스스로에 대해 대견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4년간 1군 기록이 없다. 2008년 말 한화에서 KIA로 두 번째 이적을 하기도 했고.

“고등학교 때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다 손목을 다쳐 수술을 받았다. 오른 손목만 세 번 수술을 받았는데, 2005년에도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재활을 하다 다음해 2월 군에 가 대전에서 1년, 광주에서 1년 공익근무를 했다. 제대를 했는데도, 한화에서 별 다른 기회를 잡지 못했다. 정식선수로 등록도 안 되고 해서 정말 힘들었다. 그 때 마음속으로 고향팀 KIA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타이거즈에 있는 선배들에게 ‘나 좀 데려가달라’고 농담조로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다 정말 운 좋게 고향팀 유니폼을 입었다.”

○이종범의 은퇴, 그리고 부진


고교 시절까지 주로 2루수를 맡았던 신종길은 한화를 거쳐 KIA에 입단한 뒤 본격적으로 외야수로 정착했다. 발과 배트스피드가 빠르고 손목 힘이 강해 타자로서 잠재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외야에 유독 좋은 선수가 많아 팀 사정상 주전 도약은 쉽지 않았다. 2011년 처음으로 세 자릿수 경기(116게임)에 출전하는 등 매년 출장 기회를 조금씩 늘려갔지만, 한창 기대치가 높아진 2012년 다시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지난해 시즌 개막 직전 ‘타이거즈 레전드’였던 이종범 현 한화 코치가 현역에서 은퇴했다. 구단과 이종범의 기나긴 신경전이 끝났지만, 불똥은 의외로 신종길에게 튀었다. ‘신종길이 있어 이종범이 은퇴했다’고 생각한 팬들은 이종범을 대신해 우익수로 나서는 신종길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KIA 신종길.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작년 타율이 고작 1할대(0.157)였다. 44경기밖에 뛰지 못했고.

“지난해는 사실 유니폼 입기도 싫었다. 내가 타석에 서면 스탠드에서 이종범 선배 응원가가 터져 나왔다. 못하면 평소보다 더 욕도 많이 먹었고. 어느 순간부터 타석에 서는 게 싫고 두려웠다. 이종범 선배가 은퇴를 하신 게 내 잘못도 아닌데….”

-선동열 감독은 스프링캠프를 떠올리며 ‘신종길이 야구에 대한 간절함이 생긴 것 같다’고 평가했다. 심리적, 기술적으로 좋아진 게 있다면?

“작년 시즌이 끝난 뒤 이대로 주저앉을 순 없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야구를 시작한 뒤 가장 많이, 열심히 훈련한 것 같다. 기술적으로는 스윙 궤적을 바꿨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스타일이었는데, 겨울부터 의식적으로 레벨 스윙, 아니 밑에서 위로 치는 스타일로 바꿨다. 코치님들께서 작년까지는 ‘나 홀로 타이밍’이라고 날 놀리기도 했다. 투수 타이밍에 맞추지 못하고, 나만의 스윙을 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스윙 궤적을 바꾸면서 타이밍을 내가 아닌 투수의 볼에 맞추면서 좋아진 것 같다. 아래로 떨어지는 변화구에 예전보다 헛스윙이 줄어 삼진수도 적어졌다.”

-성적이 워낙 좋아 주변에선 ‘곧 다시 제 위치로 돌아갈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다. 하지만 이순철 수석코치는 “페이스가 꺾일 것 같지 않다”고 하던데….

“현 성적이 시즌 끝까지 갈 것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내 실력보다 지금 성적이 좋게 나오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겁먹고 위축되지도 않는다. 지난 겨울에 어느 해보다 많은 땀을 흘렸다. 주전이든, 백업이든, 주어진 위치에서 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하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성적은 그 다음 문제다.”

○“주찬이 형, 오히려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

26억원의 계약금을 받은 FA 김주찬의 올해 연봉은 5억원, 신종길의 연봉은 4500만원이다. 신종길의 맹활약으로 인해 둘의 몸값 대비 효과가 한동안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김주찬의 부상 이탈이 없었더라면, 그는 아마 지금도 주전이 아닌 교체 멤버였을 것이다. 4월 초 왼 손목 골절상을 입었던 김주찬은 예상보다 이른 이달 25일 안팎이면 1군에 복귀할 전망이다. 신종길로선 당장 주전 자리를 위협받을 수 있다.

-김주찬이 복귀하면 외야 주전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다. 다시 후보로 밀릴 수도 있고.

“주변에서 ‘김주찬이 늦게 복귀하면 개인적으로 좋은 게 아니냐’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찬이 형이 빨리 팀에 복귀했으면 좋겠다. 주찬이 형이 오기 전에도, 우리 외야는 이미 경쟁이 치열했다. 국가대표 1번타자(이용규)도 있고, 2009년 MVP(김상현)도 있고, 4번타자(나지완)에 매년 3할을 칠 수 있는 타자(김원섭)도 있다. 이미 충분히 경쟁 중이다. 주찬이 형이 돌아와서 내가 게임에 못 나가더라도, 팀을 위해 좋은 일이라면 주찬이 형이 빨리 팀에 복귀했으면 좋겠다.”

-이제 유망주 딱지를 뗀 느낌이다. 어떤 야구 선수가 되고 싶은가.

“유망주? 한국 나이로 내 나이 서른하나다. 이 나이에 무슨 유망주인가. 그동안 내가 야구를 못 했으니 나오는 얘기다. 이제 내 야구를 해야 할 나이다. 지난해 많은 마음고생을 하면서 힘겨웠다. 올해 이렇게 게임에 나서고, 아프지 않고 야구를 할 수 있는 게 기분 좋을 뿐이다. 앞으로 팬들을 설레게 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어, 신종길이 나왔네. 안타 칠까. 누상에 나가면 도루를 할까’, 이렇게 항상 팬들이 내 모습을 보며 설렐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발에는 자신 있다. 힘차게 뛰는 야구를 보여주고 싶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트위터 @kimdoh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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