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곤경 때마다 일본의 방패는 무라야마 담화, 어려울 때의 조강지처 아닌가그런 존재를 내쫓겠다는 건 ‘일본 파괴’ 하는 자해 행위아베 총리는 폭주를 멈추고 역사와 과오에 겸허할 때다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나의 핵심은 두 대목입니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의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줬다”는 걸 인정하고 “의심할 여지없는 이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머리를 숙인 것입니다. 덕분에 ‘일본의 사과’ 하면 나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묘한 일은 내가 태어난 후에 벌어졌습니다. 나에게 눈을 흘겼던 사람들이 오히려 나를 더 많이 써먹기 시작한 겁니다. 이웃에서 우리 집안의 잘못을 따질 때마다 “우리는 무라야마 담화를 낳았다”고만 하면 그냥저냥 넘어가자 천덕꾸러기도 쓸모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그때부터 나는 살기는 좀 사는데, 도덕적으로는 빈한(貧寒)한 집안의 조강지처(糟糠之妻)가 됐습니다.
쫓겨날 땐 쫓겨나더라도 아베 총리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내 목숨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일본이라는 집안의 체면과 장래가 걱정돼서입니다. 수백 년, 수천 년 전의 일도 아닌데 침략인지 아닌지를 꼭 훈장어른들에게 물어봐야 압니까. 한때 집안을 책임졌던 어른이 약속한 말을 자기 맘에 안 든다고 함부로 짓밟아도 됩니까. 동네에서 인기가 조금 높아졌다고 다른 동네 사람들 욕보인 사실을 아니라고 우길 수 있나요. 남에게 폐 끼치는 걸 그렇게 싫어하는 가풍을 갖고 있으면서 ‘폐’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스스로에게는 어째서 그리도 관대하십니까.
부질없는 앙탈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쫓겨나면 내 뿌리에 달린 ‘김대중-오부치의 21세기 파트너십 공동선언’(1998년)과 전후 60년에 발표한 ‘고이즈미 담화’(2005년)도 찬밥 신세가 되겠지요. 전후 70년이자 한일협정 50주년이 되는 2015년, 사이좋게 한바탕 놀아보자던 동네잔치도 파투날 겁니다. 비슷한 경위로 태어난 나의 자매, 미야자와 담화와 고노 담화도 한꺼번에 쫓겨날 게 틀림없고. 그러고서 집안사람들이 얼씨구나 하고 군 위안부 강제연행 부정하고 교과서는 내키는 대로 쓰면서 야스쿠니로, 독도로, 헌법 개정으로, 할 말하는 나라로 달려가겠다고 하면….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흉 하나 더 보자면 나를 그렇게 싫어하는 아베 총리가 이번에도 내 치마폭 뒤에 숨었다는 사실을 아세요. 그는 “침략의 정의는 확실치 않다”고 했다가 손가락질을 당하자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는 인식에 아베 내각은 역대 내각과 같은 입장”이라고 피해 갔습니다. 무라야마 담화 속의 ‘아시아의 여러 나라’ ‘다대한 손해와 고통’이라는 표현과 글자 하나 안 틀리지요? 통하지도 않을 ‘고도모 다마시(어린애 속이기)’인데도 우리만 정색하고 얘기합니다. 피해 당사자의 말에는 “굴복하지 않겠다”고 큰소리 땅땅 치다가 우리보다 힘이 센 먼 이웃(미국)이 웅성거리니까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것도 창피합니다.
제 운명요? 나도 모릅니다. 다만 나를 부정하는 건 일본의 큰 실수라는 건 압니다. 워싱턴포스트가 아베 총리의 역사인식을 ‘자기 파괴적 수정주의’라고 했는데 ‘자기 파괴’가 아니라 ‘일본 파괴’ 아닌가요. 나도 내가 필요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그러나 나는 일본이 나라다운 나라, 염치를 아는 나라, 균형감각을 가진 나라로 가는 길목에서 한때 꼭 필요했던 존재라는 평가 정도는 받고 무대에서 내려오고 싶습니다. 그게 과욕입니까.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