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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고기정]BMW 타고 온 루산의 자원봉사자

입력 | 2013-05-06 03:00:00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4·20 강진’이 발생한 다음 날 중국 쓰촨(四川) 성 야안(雅安) 시 루산(蘆山) 현 소재지를 찾았다. 노숙을 해야 할 처지여서 대로변 인도에 자리를 잡았다. 오후 10시쯤 됐을까. 앞에 있던 은색 BMW 차량 조수석으로 자원봉사 표찰을 단 세련된 20대 여성이 들어갔다. 운전석에는 비슷한 또래의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둘은 안에서 한참을 뭔가 상의하는 듯하더니 차를 옮겨 어지러운 현장을 빠져나갔다.

자원봉사자와 BMW의 조합. 이 모습은 도로를 메운 앰뷸런스와 가설 천막, 계속되는 여진의 풍경과 묘한 부조화를 이뤘다. 자원봉사자와 재난 현장의 기묘한 동거는 루산의 특징이기도 했다. 그곳에는 1만 명 이상의 젊은 자원봉사자가 운집해 있었지만 대부분 할 일이 없어 보였다. 낮에는 어슬렁거리고, 밤에는 삼삼오오 모여 놀았다.

젊은 자원봉사자들이 유휴인력으로 전락한 이유는 당국이 원치 않아서다. 정부는 군 병력과 자체 구호조직만으로 현장 지원이 충분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젊은이들은 인터넷으로 봉사대를 결성해 계속해서 모여들었다. 현 소재지에 이재민보다 자원봉사자가 많아지자 당국이 해산을 종용하기도 했다. 5년 전 원촨(汶川) 대지진 초기에 봉사 인력 부족으로 애를 먹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중국에서 ‘남의 일에 신경 쓰지 말라(別管閑事)’는 말이 있다. 그러다 보니 쇼핑몰에서 노인이 졸도해 쓰러져도, 시장에서 유치원생 여아가 차에 치여 뒹굴어도 모른 체한 것이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지진 때는 젊은이들이 BMW를 몰고 오거나 자전거를 타고 산길을 돌아오거나 일단 현장에 도착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

이들이 루산에 몰려든 건 인도주의적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것뿐일까. 할 일이 없어도 집에 돌아가지 않은 채 밤새도록 모여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일시적으로 무정부 상태가 된 재난 현장에서 일종의 해방구를 찾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최소한의 질서만 유지되는 곳에서 아스팔트를 점유한 채 사회주의 정치 체제에서 통제되어 온 젊음을 뿜어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 갇혀 있던 욕구가 오프라인으로 분출된 건 이번뿐이 아니다. 지난해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분쟁으로 중국 도심을 메운 시위대는 ‘펀칭(憤靑)’, 이른바 분노한 청년들이었다. 당시 베이징(北京) 일본대사관 앞에서 만난 학생들은 “저장(浙江) 성에서 꼬박 하루를 기차 타고 올라왔다”며 “일본이 싫기도 하지만 시위를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운동 때 베이징대 1학년이었다는 한 지인은 “우리는 실패한 세대다. 다시는 도로로 못 나간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20여 년 후 젊은이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1월 난팡(南方)주말 사태에서 보듯 정치적 사안에 대한 응집력은 여전히 떨어진다. 하지만 외부를 향해 뭔가 말하고 싶어 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려 한다. 시진핑(習近平) 시대 들어 일부 통제가 완화되고 있는 것은 고삐를 늦추지 않으면 폭발해버리기 때문이다.

톈안먼 사태 이후 민족주의 교육의 세례를 받고 자란 바링허우(八零後·1980년대 출생자)들은 서구를 동경하면서도 중화주의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세대다. 국가와 민족적 이익이 침해받았다고 생각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공격해댄다. 티베트에서 120명 가까이 분신했다고 말해주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 언론에서 보도를 전혀 안 한다”며 놀란다. 그러다가도 다른 나라가 티베트 분신 사태를 우려하면 “왜 내정 간섭하느냐”고 반발한다.

중국의 앞날을 보려면 지도부의 생각과 동향도 중요하지만 젊은이들의 의미 있는 변화도 잘 지켜봐야 할 때다.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