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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끼치는 블랙메탈… 봄밤이 제격입니다

입력 | 2013-05-07 03:00:00

[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
2013년 5월 6일 월요일 맑음. 카르파티아. #56 Phoenix ‘Entertainment’ (2013년)




어린 시절을 대전에서 보냈다. 그때만 해도 별로 갈 데도, 할 것도 없었다. 어린이날이면 보문산이나 대청댐 유원지에 가서 경치를 보거나 맛있는 걸 먹으며 건전한 하루를 보냈다.

어린이날이었던 5일, 몸만 큰 어린이인 내가 좋아할 만한 공연이 있었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블랙 메탈 밴드 ‘크레이들 오브 필스’의 첫 한국 콘서트. 소수 마니아를 이끄는 극단적인 장르에 속하지만 이들은 최근 몇 년 새 빌보드 앨범 차트 100위권 내에 들고 그래미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인지도를 얻었다. 어떤 사람은 뱀파이어, 마녀, 어둠의 의식을 다룬 그들의 가사나 기괴한 분장, 극렬한 악곡이 무섭다지만 TV 시리즈 ‘전설의 고향’의 오랜 팬으로서 난 대환영이다.

한(恨)과 원혼의 세계를 다루는 한국 블랙 메탈 밴드 오딘이 오프닝을 장식했다. 크레이들 오브 필스는 무대 앞쪽으로 몰려든 200여 골수팬의 환호를 받으며 7시 40분쯤 등장했다. 얼굴 곳곳에 굳은 상처 자국 같은 검은 칠을 했지만 그들은 산 사람이었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땀에 칠이 지워졌으니까. 멤버들의 정확하고 날카로운 연주도 대단했지만, 보컬 대니 필스의 울부짖음은 스튜디오 조작이 아니었다. 마이크를 입술에 바짝 대고 낮게 그르렁대다가 마이크를 얼굴에서 멀찌감치 떼면 원혼의 비명 같은 초고음을 질러댔다.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아쟁 소리만큼 소름끼쳤다. 어느새 험준한 동유럽 카르파티아 산맥으로 들어가 어두운 숲에서 정체 모를 짐승에게 쫓기는 기분이 들었다.

몇 년 전 구입한 책 ‘언데드 백과사전’에 따르면, 크레이들 오브 필스의 고향인 영국과 아일랜드에도 뱀파이어 전설이 많았다. ‘드라큘라’의 작가 브램 스토커의 어머니도 아일랜드 출신이다. 당시 그곳에는 입가에 핏자국을 달고 안색이 대리석처럼 핏기 없는 결핵 환자가 넘쳐났다고 한다.

아직 난 이런 얘기들이 좋다. 어두운 엔터테인먼트가. 아이처럼 순수해서일까. 좀 있으면 여름. 흐흐흐.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