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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활동 서정순 할머니에게 15년째 40대 남성이 몰래 기부

입력 | 2013-05-08 03:00:00

“착한 돼지저금통, 5월에 또 왔네요”




양양군 제공

4일 오후 3시경 강원 양양군 강현면 주청리에 사는 서정순 할머니(82·사진)는 집 앞에서 상자 1개를 든 40대로 보이는 남성을 봤다. 직감적으로 이 남성이 매년 5월이면 100만 원가량이 든 저금통을 보내는 익명의 독지가임을 알아차렸다.

할머니는 차나 한잔하고 가라고 잡아끌었지만 이 남성은 “할머니 건강하세요”라는 말과 함께 상자를 내려놓은 뒤 일행으로 보이는 여성 2명과 달아나듯 사라졌다. 상자 안에는 ‘건강하시고 좋은 일에 쓰세요’라고 적힌 종이와 매년 서 할머니에게 전달된 것과 같은 종류의 붉은색 돼지저금통이 있었다. 올해도 지폐와 동전 등 100만 원가량이 저금통에 들어 있었다.

서 할머니에게 돼지저금통이 전해진 것은 속초에서 칼국수 식당을 운영하던 1999년 5월부터. 손님들에게 욕쟁이할머니로, 지역에서 홀몸노인을 위한 봉사자로 소문난 할머니에게 ‘좋은 일에 써 달라’는 메모와 함께 전달됐다. 그동안 익명의 기부자는 저금통이 든 상자를 식당이나 집에 가져다 놓은 뒤 전화로 알려와 만날 기회가 없었지만 올해 처음으로 마주친 것이다. 할머니가 2003년 양양으로 식당을 옮긴 뒤에도 5월이면 돼지저금통은 어김없이 왔고, 2010년 뇌출혈로 쓰러져 식당을 그만둔 뒤에는 집으로 배달됐다.

서 할머니는 돼지저금통 기부금을 지역의 뜻있는 인사들과 같이하는 홀몸노인 반찬 봉사에 사용한다. 식당을 그만둔 뒤에는 수입이 끊긴 터라 돼지저금통 기부는 큰 보탬이 된다. 이 때문에 할머니는 배를 가른 돼지저금통도 버리지 못하고 보관해 왔다. 일부를 2002년 태풍 루사 때 물난리로 잃어버린 게 아쉬울 뿐이다.

양양=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