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기기와 SNS의 사용이 증가하면서 출판계에도 단문, 단편처럼 호흡이 짧은 책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한 가지 일에 15분 이상 집중하기 힘든 ‘쿼터리즘’이 영상 매체를 넘어 종이책에도 적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송금한 기자 email@donga.com
최근 출판물의 판매 기록을 보여주는 교보문고의 주간 베스트셀러 순위에 따르면 10위 권 중 2위에 오른 ‘위대한 개츠비’를 빼면 모두 호흡이 짧은 글이다.
3위까지는 소설이 차지했지만 1위 ‘꾸뻬씨의 행복여행’은 정신과 의사가 여행지에서 겪은 상황별 조언을 담은 책으로 기승전결이 없다. 미국 중국 등을 여행하는 주인공의 발길에 따라 스토리가 이어진다. 3위에 오른 신경숙 소설가의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26편의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위대한 개츠비’가 최근 영화로 만들어져 국내 개봉을 앞두고 소설까지 부수적으로 상위권에 오른 것을 제외하면 이른바 장편, 긴 이야기는 없는 셈이다.
서울 영등포의 영풍문고에서 만난 회사원 김정인 씨(32)는 “요즘 인기 있는 책들은 그림 반, 글 반처럼 느껴진다”며 “여백이 많고, 삽화와 짧은 단락의 글이 많아 한 권을 단숨에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순위에 오른 책들은 단문 문자메시지나 140자 트위터의 글에 익숙해진 독자들의 취향을 감안해 사진과 함께 여백이 많게 편집하고 있다.
교보문고 이수현 팀장은 “책 전체를 읽기보다는 부분 부분을 골라 있는 ‘발췌독(讀)’에 대한 니즈(needs)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렵게 여겨지던 인문학 도서의 입문서 역할을 하던 서평 책들도 인기다. 2011년 출간된 ‘책은 도끼다’와 지난해 나온 ‘남자는 서재에서 딴짓한다’ ‘CEO의 서재’는 저자가 읽은 책을 정리해 소개하는 책들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익숙해진 독자를 겨냥한 출판사의 기획도 늘고 있다. 7일 출간된 ‘마법의 순간’은 소설가 파울루 코엘류의 트위터 글 중 170여 개를 만화가 황중환 작가의 그림과 함께 엮은 책이다.
우려를 제기하는 전문가도 있다. 한국출판연구소 백원근 연구원은 “영상물에 15분 이상 집중하기 힘든 ‘쿼터리즘’이 책에도 적용되고 있다”며 “쉬운 독서는 책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짧은 글들이 사고의 확장을 방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송금한 기자 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