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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여백 속 글半 그림半… 베스트셀러 대세는 ‘짧은 글’

입력 | 2013-05-08 03:00:00


스마트 기기와 SNS의 사용이 증가하면서 출판계에도 단문, 단편처럼 호흡이 짧은 책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한 가지 일에 15분 이상 집중하기 힘든 ‘쿼터리즘’이 영상 매체를 넘어 종이책에도 적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송금한 기자 email@donga.com

요즘 베스트셀러는 짧은 글이 ‘대세’다.

최근 출판물의 판매 기록을 보여주는 교보문고의 주간 베스트셀러 순위에 따르면 10위 권 중 2위에 오른 ‘위대한 개츠비’를 빼면 모두 호흡이 짧은 글이다.

3위까지는 소설이 차지했지만 1위 ‘꾸뻬씨의 행복여행’은 정신과 의사가 여행지에서 겪은 상황별 조언을 담은 책으로 기승전결이 없다. 미국 중국 등을 여행하는 주인공의 발길에 따라 스토리가 이어진다. 3위에 오른 신경숙 소설가의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26편의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위대한 개츠비’가 최근 영화로 만들어져 국내 개봉을 앞두고 소설까지 부수적으로 상위권에 오른 것을 제외하면 이른바 장편, 긴 이야기는 없는 셈이다.

그 대신 명상을 주제로 다룬 에세이와 상황별 대처법 등을 다룬 자기계발서가 인기를 얻고 있다. 5위에 오른 책은 아이돌 그룹 멤버가 사진을 모아 짧은 단상을 실은 ‘인피니트 엘의 포토 에세이 북’이다.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4위) ‘나는 천국을 보았다’(7위) ‘청춘 거침없이 달려라’(8위)도 자기계발, 에세이류 서적이다.

서울 영등포의 영풍문고에서 만난 회사원 김정인 씨(32)는 “요즘 인기 있는 책들은 그림 반, 글 반처럼 느껴진다”며 “여백이 많고, 삽화와 짧은 단락의 글이 많아 한 권을 단숨에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순위에 오른 책들은 단문 문자메시지나 140자 트위터의 글에 익숙해진 독자들의 취향을 감안해 사진과 함께 여백이 많게 편집하고 있다.

교보문고 이수현 팀장은 “책 전체를 읽기보다는 부분 부분을 골라 있는 ‘발췌독(讀)’에 대한 니즈(needs)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렵게 여겨지던 인문학 도서의 입문서 역할을 하던 서평 책들도 인기다. 2011년 출간된 ‘책은 도끼다’와 지난해 나온 ‘남자는 서재에서 딴짓한다’ ‘CEO의 서재’는 저자가 읽은 책을 정리해 소개하는 책들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익숙해진 독자를 겨냥한 출판사의 기획도 늘고 있다. 7일 출간된 ‘마법의 순간’은 소설가 파울루 코엘류의 트위터 글 중 170여 개를 만화가 황중환 작가의 그림과 함께 엮은 책이다.

책의 호흡이 짧아지는 것은 전자책 시장의 성장과도 무관치 않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전자책 시장은 연평균 30.3%씩 커지고 있다. 종이책 출간과 함께 전자책 콘텐츠 유통을 염두에 두는 출판사는 한 권의 책을 여러 장으로 분할해 제공하기도 한다. 회당 유료 콘텐츠로 제공하는 만화처럼 소액 구매자들을 놓치지 않기 위한 마케팅이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글이 이미지처럼 인식되는 스마트 기기의 영향으로 만연체가 사라지고 짧은 글의 강세가 이어져 소설 장르까지 확산될 것”이라며 “올해 나오키상 수상작인 아사이 료 작가의 ‘누구’에는 트위터 글들이 그대로 소설에 등장한다”고 말했다.

우려를 제기하는 전문가도 있다. 한국출판연구소 백원근 연구원은 “영상물에 15분 이상 집중하기 힘든 ‘쿼터리즘’이 책에도 적용되고 있다”며 “쉬운 독서는 책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짧은 글들이 사고의 확장을 방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송금한 기자 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