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맘 자부심 날 웃게 하고 가족들 배려가 날 춤추게 해”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 이마트 은평점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는 어머니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힘들어도 내 세상이 있어 좋다”는 이들은 우리 시대 ‘일하는 엄마’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보여줬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지난해 40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65.9%로 전 연령별 여성 경제활동참가율 중 가장 높았다. 주부보다 일하는 엄마가 더 자연스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시대 ‘일하는 엄마’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서울 은평구 이마트 은평점에서 계산 업무를 하는 엄마 20명을 인터뷰했다.
○ 돈 버는 엄마가 능력 있는 엄마
경제적인 이유로 일을 택한 엄마들이지만 ‘내 힘으로 돈을 번다’는 자부심은 이들에게 돈 못지않게 소중하다. 강은숙 씨(48)는 “예전처럼 사고 싶어도 못 사는 게 없어서 좋다”고 말한다. 가전제품처럼 비싼 물건은 꼭 남편과 상의해야 살 수 있었는데 이제는 과감하게 산다는 것.
김혜영 씨(42)는 친정어머니에게 매달 50만 원씩 용돈을 보낸다. 성과금이나 보너스를 받으면 통 크게 절반을 떼어 남편에게 “쓰라”고 건넨다. 일하는 걸 반대하며 “얼마나 버티나 두고 보자”던 남편도 이젠 아내에게서 받은 용돈을 주변에 자랑한다. 정효숙 씨(48)도 “사달라는 물건을 척척 사주니 아이들이 ‘엄마가 쿨해졌다’고 좋아한다”며 웃었다.
김연숙 씨는 “요즘은 아이들도 원하는 것, 필요한 것 다 해주는 엄마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아이들을 너그럽게 대할 수 있다”며 “그렇지 못하면 괜한 짜증이 늘어 아이들과의 충돌도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사회생활을 한다는 자부심도 크다. 이덕미 씨(48)는 “회사에서 가족 경조사를 챙겨줄 때 ‘내가 한 사회에 소속돼 있구나’ 싶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김왕임 씨(49)는 “이름 석 자를 불러주는 것도 참 좋다”며 “사회에 나와 일하니까 가능한 일”이라며 웃었다. 우울증이 심해져 일을 시작했다는 강 씨는 “삶이 180도까지는 아니어도 130도 정도는 바뀐 것 같다”며 “내성적이던 성격이 많이 변했고 친구 같은 동료들과 남편 험담도 하면서 친하게 지내는 것이 정말 좋다”고 말했다.
힘든 업무 속에서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 덕분에 삶의 활력을 느낀다는 계산원 김 연숙 씨.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일과 가사, 이중의 부담 때문에 너무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엄마들은 고개를 젓는다. 가족이 먼저 일하는 엄마를 돕는다는 것. 처음에 남편의 “그만두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 더 악착같이 집안일도 열심히 했다는 김혜영 씨. 이제는 남편이 아침에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해놓고 출근할 만큼 변했다. 이덕미 씨도 “남편이 집안일을 도우며 주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모 씨(47)는 엄마를 걱정해준 작은아들의 고운 마음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2009년 엄마가 마트에서 일하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초등학교 5학년이던 아들은 마트 계산원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집에 돌아와 “의자에 앉을 수 있는 일이라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이해해주고 도와줘서 큰 힘이 된다”고 했다.
○ 힘들어도 정년까지!
일이 힘들어 그만두고 싶은 때도 있다. 하루 6시간 반을 서서 일하는 건 육체적으로 무척 고되다. 돈을 던지거나 무턱대고 반말로 소리를 지르는 ‘진상’ 고객이라도 만나는 날은 돈이고 자부심이고 다 필요 없다는 생각도 든다. “고객님” 소리가 입에 붙은 건 일종의 직업병. 김혜영 씨는 “쉬는 날 마트에 장을 보러 갔을 때 다른 손님한테 ‘고객님, 비켜주세요’라고 말해 아이들이 박장대소했다”며 웃었다. 그는 아들에게도 무심코 ‘고객님’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여보, 그동안 수고했어. 이제 내가 먹여 살릴게∼.”
주애진·김성모·곽도영 기자 ja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