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엔평화대학 아태센터 운영실태 들여다보니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 있는 유엔평화대학 아시아태평양센터. 교육부는 곧 현장조사를 실시한 뒤 이달 중 폐쇄명령을 내릴 계획이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들은 대부분 아태센터의 정확한 실체를 몰랐으며 평화교육을 한다는 취지에 동의해 직책을 맡거나 강의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이사는 재단의 실체를 알고도 교육 과정의 불법 운영을 문제 삼지 않았다.
○ 장관과 대사 출신이 강의 맡아
권 전 실장은 “(재단에서) 대학을 하자고 해서 한 거다. 좋은 뜻이라서 했지만 하다 보니 별로 안 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 그만뒀다”고 말했다. 그만둔 이유에 대해서는 “외교부와 문제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난 잘 모르는 사항이다. 그만 이야기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은 아태센터의 홈페이지에 ‘고문변호사/석좌교수’라는 직책으로 나온다. 여기에 강 전 장관은 “많은 역할을 해주실 것을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격려사를 남겼다. 본보 취재 결과 강 전 장관은 2011년 4월 석좌교수로 위촉됐다.
강 전 장관은 “석좌교수 직을 맡는 데 동의했지만 교육기관 인가를 받지 못하는 등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지난해 임용 동의를 취소했다. 현재 공식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다”면서 “학생들의 피해를 구제할 방안을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선준영 전 유엔대표부 대사와 박경서 초대 인권대사도 동영상에 등장한다. 이들은 아태센터에서 공식 직책은 맡지 않았지만, 수업시간에 몇 차례 특강을 했다. 선 전 대사는 “(학교 측에서) 센터와 재단을 만들고 필요한 협정에 가입했다고 해서 제안을 받아들였다. 유엔대사 경험이 있기에 유엔 관련 강의를 이곳저곳에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7일자 동아일보 보도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학생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아이들이다. 유엔이나 국제기구에 대한 꿈을 품고 돈을 많이 내고 공부하고 있는데 걱정이다”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5월 재단이사로 취임한 이명희 공주대 교수(역사교육과)는 “지난해 비공식적으로 교육부와 상의했을 때 현행 기준을 적용하면 학교가 폐쇄되고 학생 모집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러나 국제협약이 체결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일단 불거진 문제는 분명하게 처리해 나가되, 적합한 인물을 찾아서 빨리 조직을 정상적으로 되돌리는 게 학생은 물론이고 나라를 위해서도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 폐쇄명령 나오면 학생들 피해
교육부는 교내 성추행에 이어 불법 설립 운영 문제까지 불거진 아태센터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불법 운영 사실을 확인하면 이달 폐쇄명령을 내릴 계획이다. 아태센터가 폐쇄되면 재학생들은 그동안 이수한 학점을 인정받을 수 없다.
교육부 관계자는 7일 “아태센터가 국제조약에 근거해 설립된 학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외교부가 공식 확인해주면 바로 현장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이날 외교부에 이 같은 내용의 문서를 요청했다.
전임교수의 성추행 의혹이 본보 보도(3일자 A1·5면)를 계기로 불거지자 교육부 직원들은 5일 아태센터를 찾아가 강의실과 행정실을 갖추고 학교 형태로 운영 중이라는 사실을 이미 확인했다. 고등교육법 62조는 학교 설립이나 분교 설치 인가를 받지 않은 채 학교의 명칭을 사용하거나 학생을 모집해 학교 형태로 시설을 운영하면 폐쇄를 명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아태센터가 폐쇄되면 그동안 수업을 들은 학생이 이수한 학점은 효력을 잃는다. 교육부 관계자는 “법률적으로 학교가 아니므로 학생 신분이 인정되지 않아 보호받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아태센터는 2010년 문을 열면서 석·박사 과정을 개설했다. 아태센터는 “유엔이 인정한 국제조약기구이자 고등교육기관이고 국제조약을 근거로 설립됐으므로 교육당국의 인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해 왔다.
이샘물·김도형·이철호 기자 evey@donga.com